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2월 7일 ‘계엄군이 비무장 상태의 광주 시민들을 향해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여러 차례 헬기 사격을 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2016년 12월 광주 동구 전일빌딩 10층에서 총탄 흔적이 발견되면서 촉발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민간인에 대한 헬기 사격 논란이 사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동아’는 이미 1985년 7월호에서 언론 사상 최초로 이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신동아’는 총 94쪽에 달하는 특별기획으로 ‘광주사태’(당시 공식 표현)를 심도 있게 다뤘는데, 이 가운데 윤재걸 기자가 쓴 ‘다큐멘터리- 광주, 그 비극의 10일간’에서 계엄군의 헬기 총기 사격을 보도한 것.
5월 21일 상황을 정리한 부분에서 “한편 시민들이 무기고로 몰려갈 무렵, 광주시가지 위를 떠돌던 군용헬기가 도청 부근을 선회하더니 갑자기 고도를 낮추고는 MBC가 소재한 제봉로 부근에다 기총소사를 하기 시작하자, 금남로 부근의 골목에서 웅성거리던 시위군중들은 혼비백산, 길바닥에 엎드리거나 건물 가장자리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헬기로부터 날아온 탄환에 죽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274쪽)고 서술했다.
이 기사를 쓴 윤재걸 씨는 1980년 신동아 기자로 있으며 5·18 취재 건으로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되었다 1984년에 복직했다. 윤씨는 기사와 관련해 “강제 해직 후 4년여 동안 시민군 출신, 일반 광주시민, 5·18 단체 관련자 등을 만나 열흘간의 진실을 취재했다.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확인한 진실만을 담았다”고 말했다.
또한 “책이 나온 직후인 6월 20일 이정윤 당시 신동아 부장과 함께 보안사로 끌려가 ‘북한 방송을 듣고 썼다’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1박2일 동안 알몸 상태로 구타도 당했다. 인간적 모멸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튿날 밤, 남시욱 당시 출판국장과 김병관 당시 부사장이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그동안 동아일보 전 기자가 항의농성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5년은 5·18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해다. 그해 5월 23일 대학생들이 광주항쟁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서울미문화원을 점거했고, 같은 날 신기하 의원(12대·신민당)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광주항쟁을 본격 거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생과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은밀한 속삭임에 머물던 5·18이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를 심층적으로 다룬 ‘신동아’ 1985년 7월호는 30만3000부가 발매됐다.
정치권에 몸담기도 한 윤씨는 ‘작전명: 화려한 휴가’ ‘정치, 너는 죽었다’ ‘엽기공화국 자화상’ 등 정치평론집과 시사르포집을 펴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시집 ‘유배공화국’을 출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