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미투]도제식 구조로 여성들 피해 잦아… ‘거물’ 박재동까지 추문 불거져
웹툰작가 이태경 씨(39)가 시사만화가 박재동 씨(66)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밝히면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만화계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이 씨는 2011년 결혼을 앞두고 박 씨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간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박 씨는 1988년 한겨레신문 만평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시사만화계 거물로 자리 잡았다.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와 자신의 글에 따르면 이 씨는 2011년 8월 17일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일에 경기 부천의 한 식당에서 박 씨와 점심을 같이했다.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바를 앞에 두고 나란히 앉은 박 씨는 갑자기 이 씨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치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 씨가 제지하자 “너는 한 번에 두 명의 남자를 사귄 적 있느냐. 둘을 만나면 둘 모두와 섹스했니” 등을 물으며 성희롱했다. 또 “남녀 관계는 혼외 관계를 통해 이해가 깊어진다” “나는 네가 맛있게 생겼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추행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이 씨는 자칫 와전이라도 되면 결혼이 위태로워질까 봐 그 자리에서는 말도 못했다. 그는 “예비 시부모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만화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기성 작가의 집이나 화실에서 문하생으로 일하는 도제(徒弟)식 구조에서 박 씨 말고도 성폭력이 적지 않게 자행돼 왔다는 얘기다. 자신의 만화가 데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작가에게 ‘볼모 잡힌’ 문하생이나 어시스턴트들은 성폭력 피해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만화가협회는 2016년 11월 고질적 위계구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례를 담은 ‘불공정 노동행위 및 성폭력 사례집’을 발간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20대 안팎 여성이었다.
사례집에 따르면 유명 40대 남성 작가 A 씨는 화실에서 일하는 20대 초반 여성 어시스턴트 3명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툭하면 손으로 때렸다. 작업이 미숙하다는 이유였다. 치마를 입을 때는 성적 수치심이 더 컸다. 40대 유부남 B 작가는 여성 어시스턴트를 차에 태우고는 “우리 단둘뿐이다. 저 산으로 널 끌고 가서 어떻게 할까?”라고도 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박 씨에게 5번 넘게 휴대전화를 걸고 “해명을 듣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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