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곳곳에 파장을 일으킨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이제 대학가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여전히 침묵하거나 뒤늦게 사과하는 사이 대학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미투가 이어지고 있다. 성적을 주는 교수와 제자는 사실상 갑을 관계와 비슷하다. 그동안 대학가 성폭력이 일부만 수면으로 드러난 이유이기도 하다.
연극과 영화, TV 등에서 조연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 최용민 씨(65)는 28일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 씨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글이 등장했다. 자신을 배우로 소개한 여성은 “공연을 함께하며 최 씨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최 씨는 교수직에서 물러나며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 피해를 본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 모든 연기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이자 배우인 김태훈 씨(52)도 이날 오후 공개 사과하고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피해 여성 A 씨는 전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과거 학부생 시절 당시 세종대 강사였던 김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김 씨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요구하며 집 앞까지 찾아왔다. 부모님에게 알려질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자기 아내와도 나를 자주 만나게 했다. 나는 노예였다. 김 씨는 ‘너는 입이 무거운 아이라 좋다’고 말했다. 자살까지 시도했다”라는 내용을 폭로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사과문에서 “만남을 이어가다 남녀 관계를 맺게 됐다. 사귀는 관계였고 다른 일로 멀어져 헤어지게 됐다. (A 씨가) 저와의 만남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명지전문대 대나무숲에는 연극영상과 교수 B 씨를 향한 폭로 글이 이어졌다. 자신을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피해자는 “B 씨는 여학생들을 수시로 자신의 방에 불러 안마를 시켰다. B 씨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린 채 엎드렸다. 우리는 전자레인지에 물수건을 돌린 뒤 허리 위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비슷한 폭로는 하루 사이 10건을 넘어섰다.
또 B 씨는 최근 학생들이 참석한 회식자리에서 미투 확산을 언급하며 “예술 하면 다 그렇다. 윤택이 형(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힘들겠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재학생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B 씨가 사실상 왕이나 다름없다. 폭로하는 사람은 매장될 것 같았다. 우리는 단지 배우의 꿈을 이루고 싶을 뿐이다”라고 털어놨다.
앞서 청주대 공연영상학부 2011학번 학생들은 배우 조민기 씨(53)가 교수로 재직하던 때 빚어진 상습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조 씨는 입건된 상태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미대 학생회도 유명 디자인 업체 대표가 강단에 설 수 없도록 조치해 달라며 미투 운동에 힘을 더했다.
대학가 역시 문화예술계처럼 성폭력 범죄가 발생해도 가해자가 쉽게 처벌받지 않는다. 교수나 선배가 가해자이지만 이들의 주관에 따라 매겨지는 성적이 피해자 진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석만 전 한예종 명예교수(67)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본 C 씨(50·여)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문제 발생 당시 다른 교수에게 털어놓았지만 그대로 무마됐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미투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로 여기고 전면에 나서는 이유다.
학생회 등 단체 차원에서 제보를 받아 피해 사례를 모은 뒤 고발하려는 노력까지 나오고 있다. 한 음대 학생은 “온라인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음대 전반에 걸친 성폭력 및 피해 사례에 대한 제보를 받고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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