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부정입학’ 파문 일던 그때…정용화도 ‘뒷문’으로 입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일 16시 26분


가수 정용화, 경희대 박사과정 부정입학 사건 전말
면접 두 번 연속 불참했지만 학교 측 0점 준 면접위원 뺀 뒤 합격시켜
경찰 “입대 늦추려 대학원 이용했을 가능성”…정 씨 등 기소의견 송치


2016년 11월 경희대 예술대학 박사과정생 면접위원이던 A 교수는 지원자 정용화 씨(29)의 평가 결과란을 비워둔 채 한참을 망설였다. 4인조 남성그룹 ‘씨엔블루’ 보컬로 유명한 정 씨는 면접장에 아예 나타나지 않은 지원자였다. 면접에 결시하면 불합격 처리하는 게 이 대학 전형 원칙이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면접심사위원장이자 포스트모던음악과 학과장이던 이모 교수(50)가 “정 씨를 합격시켜라”라고 요구했다. 이 교수는 정 씨의 점수를 메모지에 적어 건네주기까지 했다. 함께 면접을 봤던 다른 교수는 “거절하면 재임용이 안 될 수 있다”며 요구에 따랐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특혜입학 파문으로 한창 여론이 들끓던 때였다. A 교수는 결단을 내렸다. “정유라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인데…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A 교수는 0점이라고 입력했다. 정 씨는 불합격했다.

● “군 입대 미루려 대학원 입학했을 가능성”

이 교수의 ‘정용화 입학시키기’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다. 정 씨는 지난해 1월 같은 대학 수시면접에 다시 응시했다. 정 씨는 이번에도 면접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정 씨에게 0점을 줬던 A 교수가 면접위원에서 제외됐다. 총점 300점에서 면접 비중이 100점이었지만 정 씨의 최종점수는 만점에 가까운 281.5점이었다. 지원자 8명 가운데 수석 합격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간 정 씨의 부정입학 혐의를 조사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정 씨는 첫 번째 면접 한 달 전인 2016년 9월 입영 통지를 받은 상황이었다. 정 씨는 그해 8월 병무청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입대를 연기하고 싶다’는 신청서를 보내기도 했다. 정 씨가 병무청에 이 같은 연기신청을 하기 한 달 전 이 교수와 만나 대학원 입학을 상의한 정황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2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 씨가 군 입대 연기를 위해 대학원 입학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대학원 합격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학업 목적으로 대학원에 지원했다. 군 입대를 미루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 씨는 “공부 목적이었다면 왜 두 차례나 면접에 불참했느냐”는 질문에는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씨는 지난해 박사과정 입학 이후에도 학교 수업에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정 씨와 이 교수가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기도 했다. 정 씨는 “이 교수가 먼저 박사과정 입학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 교수는 “정 씨 측이 먼저 입학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맞받았다. 경찰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구하자 두 사람은 모두 거부했다. 경찰은 경희대 대외협력처 부처장이 정 씨의 매니저로부터 입시 청탁을 받고 이를 이 교수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씨 소속사인 FN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이날 “저희가 경찰에서 소명한 내용과 경찰이 발표한 내용에 상이한 부분이 있다. 정 씨가 군 입대를 회피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는 이 교수는 본보 취재진 연락에 한 달 가까이 응하지 않고 있다. 경희대는 이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 “나는 뼈 빠지게 했는데” 학생들 박탈감 토로

정 씨의 부정입학이 다른 학생의 진학기회를 직접적으로 빼앗은 것은 아니다. 정 씨가 입학한 경희대 응용예술학과 박사과정 입학 정원은 2명이다. 하지만 정 씨가 입학했던 지난해 이 대학 입학 인원은 정원의 6배가 넘는 13명이었다. 학교 측은 “이 교수 요청에 따라 다른 미달 학과 정원을 통합한 것으로 교육부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희대 예술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석사과정 준비생 한모 씨(22·여)는 “뼈 빠지게 노력하고 어려운 시간 투자했는데 박탈감이 심하다. 그렇게 쉽게 타이틀을 주는 건 학교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예술대 석사과정 유모 씨(28)는 “저는 세 번 만에, 정말 힘들게 들어왔다. 그런데 누구는 면접도 안 보고 합격했다. 다른 학생들의 간절한 꿈을 빼앗아버리는 사람이 배울 자격은 있느냐”고 말했다.

이번 경찰 수사로 가수 조규만 씨(49)도 정 씨와 같은 대학에 부정입학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 씨는 면접 당일 미국 여행 중이이서 불참했지만 합격했다. 가수 조권 씨(30)는 졸업 자격 미달 의혹이 불거졌지만 혐의점이 불분명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은 이날 정 씨와 조 씨, 이 교수 등 관련자 6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배준우 기자 jjoonn@donga.com·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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