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 동대문의 유명 쇼핑몰인 ‘밀리오레’가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불시 안전점검이 시작된 것이다. 안전점검을 위해 현장을 찾은 사람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장관이 관련 분야 현장을 점검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해당 기관과 조율 없이 불시에 이뤄지는 건 드문 일이다.
이날 오전 10시 50분경 민방위복 차림의 김 장관은 “안녕하세요, 안전점검 나왔습니다”라며 서울 중구 장충단로 밀리오레 8층 관리단 사무실에 들어섰다. 행안부 안전담당 직원 10여 명이 동행했다. 쇼핑몰 직원들은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김 장관은 지난달 5일 시작한 국가안전대진단의 하나로 이날 다중이용시설 안전점검을 위해 밀리오레를 찾았다. 국가안전대진단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국민안전처 때부터 시작됐다. 최근 충북 제천과 경남 밀양 등에서 이어진 대형 화재에서 건물주의 ‘셀프 점검’이 논란이 되자 정부는 올해 실효성 있는 안전점검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밀리오레는 1998년 8월 문을 연 동대문의 대형 쇼핑몰이다. 오전 10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4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내국인은 물론이고 중국과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등 하루 수만 명이 찾는다.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건물에 점포 1800여 개가 영업 중이다.
당황한 표정의 이형주 밀리오레 관리단장이 김 장관과 함께 5층을 찾았다. 가방과 액세서리를 전문으로 파는 매장이 모여 있다. 김 장관이 동행한 서울 중부소방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엘리베이터 앞 화재감지기에 훈련용 연기를 피웠다. 화재감지 센서와 화재차단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엘리베이터 주변 천장에서 방화커튼이 내려왔다. 화재 때 유독가스가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을 통해 다른 층으로 확산되는 걸 막는 방재시설이다. 50여 명이 숨진 1월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때도 엘리베이터 틈새가 연기 확산의 주 통로로 작용했다.
대부분의 방화커튼이 이상 없이 작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방화커튼 한 개가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기 전에 멈췄다. ‘화장실’ 표지판에 걸린 탓이다. 신속한 대피를 위해 아무것도 없어야 할 비상계단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매장에서 배달 식사를 한 상인들이 식기를 모아 놓는 수거함이 비상계단 각 층에 놓여 있었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때는 비상계단 앞이 세면도구 보관함에 가려져 신속한 탈출이 불가능했다. 이 단장이 “비상구를 막지 않으려 다른 곳을 찾아봤지만 마땅히 둘 곳이 없었다”고 멋쩍어했다. 김 장관은 “함께 고민하며 대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김 장관 일행은 대피로 유도등과 가스배관 기계실 옥내소화전 방재실 등을 찾아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행안부 점검단은 방화커튼과 비상계단에서 발견된 문제점의 시정을 지시했다. 또 피난안전구역 내 피난계단과 피난유도등 추가 설치 등도 권고했다. 행안부는 4월 13일까지 진행되는 국가안전대진단 기간에 이번 밀리오레 같은 불시점검을 수시로 진행할 계획이다. 소방청과 각 지방자치단체 등이 진행하는 안전점검에서도 불시점검 비중이 늘어난다. 김 장관은 “관습과 안전이 충돌하는 부분에서 지금까지는 관습이 먼저였지만 앞으로 안전을 우선시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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