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악용한 성범죄, 흉악범 수준으로 처벌수위 높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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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태풍]12개 부처 성폭력 근절대책

8일 정부가 내놓은 민간 부문 성폭력 대책의 핵심은 직장 내 성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문제로 여겨온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대다수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버젓이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피해자는 이를 문제 삼지 못한다. 그 배경엔 솜방망이 처벌뿐 아니라 신고와 처벌을 가로막는 폐단이 겹겹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 징역 10년은 흉악범에 준해 처벌하겠다는 의지

권력형 성폭행(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법정 최고형을 징역 5년(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징역 10년(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늘리는 것은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이 죄목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도 1994년 이 죄목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형량이 조정됐다. 법정 최고형이 징역 2년(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징역 5년(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됐다.

현행법상 법정 최고형이 징역 10년인 죄는 ‘살인 예비’와 ‘미성년자 약취(납치)’, ‘추행을 위한 인신매매’ 등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성추행(강제추행)의 법정 최고형도 징역 10년이다. 권세를 이용해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성폭행한 사람을 살인을 준비하거나 아동을 납치한 흉악범에 준해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대검찰청은 ‘미투’ 폭로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해자에겐 원칙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성폭력 가해자가 도리어 “물증이 있느냐”며 피해자를 고소한다고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땐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阻却)’ 단서가 있지만 수사기관이 최종 판단을 법원에 맡긴다며 성폭력 피해자를 기소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박성민 법무부 형사법제과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성폭력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 대다수는 이번 조치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범죄 피의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무료로 법률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대한법률구조공단 및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 속한 피해자 지원 변호사의 수를 늘린다.

○ 미투 피해자에 악성 댓글 작성하면 구속 수사

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팀장과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등으로 구성된 ‘미투 피해자 보호관’ 915명은 수사가 끝날 때까지 피해자 상담과 의료 지원 등을 맡는다.

피해자의 신상을 들춰내고 조작하는 악성 댓글과 게시물은 경찰이 집중 모니터링 중이다. 도가 지나친 것은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해 즉각 삭제하고, 악의성을 띠는 것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을 통해 작성자를 찾아내 구속 수사한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 씨(33)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심한 인신공격에 시달리는 등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성폭력 은폐를 부추기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를 성인이 될 때까지 정지시키는 관련법 개정안도 추진한다. 현재는 형사 소송의 공소 시효만 정지시키는 탓에 미성년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반쪽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중 성폭력 특별 신고·상담센터를 열어 6월까지 100일간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피해 신고를 접수한다. 특히 영화와 출판, 대중문화(음악 만화 이야기 패션 등) 및 체육 등 주요 분야엔 국가인권위원회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 조사단을 보내 관계자들을 심층 면접하며 숨겨진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한다.

성폭력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은 국고보조금 등 공적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도록 관련 지침을 고친다. 지금은 성범죄가 사실로 확인돼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돼야 보조금을 끊었지만, 앞으론 가해자가 성폭력을 시인하거나 정황 증거만 확실해도 곧장 조치한다. 국립 문화예술기관 등의 임직원 채용 규정에도 성폭력 관련 내용을 넣는다.

문체부는 이 같은 내용을 전부 포함해 예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침해행위 구제 등을 위한 ‘예술가의 권익 보장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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