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서 아이 잃고도… 교통사고로 인정안돼 두번 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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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
<1> 法 보호 못받는 ‘도로외 구역’ 사고

“아파트 단지서 사고… 아이 한 풀어주려 靑에 법개정 청원” 故김지영(가명)양 엄마
“아파트 단지서 사고… 아이 한 풀어주려 靑에 법개정 청원” 故김지영(가명)양 엄마
반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계절은 하릴없이 2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낙엽이 진 자리에 눈이 내렸고, 눈 녹은 자리에 새싹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두 엄마의 시간은 여전히 가을입니다. 두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똑같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있습니다. 하준 군과 지영 양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은 손가락을 들어 ‘브이(V)’자를 그립니다. 하지만 두 엄마는 그저 카톡에서만 아이의 웃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보름 간격으로 최하준 군(당시 4세)과 김지영(가명·당시 5세) 양은 엄마 곁을 떠났습니다. 두 아이는 놀이동산 주차장과 집 앞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가장 즐겁고 편한 공간이 두 엄마에게는 비극의 현장입니다. 사고가 난 두 곳 모두 법적으로 도로가 아닙니다. 하루에 수백 대, 수천 대의 차량이 오가는 곳인데도 사고에 무방비였습니다.

○ 내 딸은 횡단보도를 건넜을 뿐입니다

지난달 말 대전 집에서 만난 서모 씨(40·여)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이쁜이’ ‘껌딱지’라고 불렀던 딸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지난해 10월 16일 사고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났다. 지영 양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서 씨와 아빠 김모 씨(41)는 소방관 부부다. 119 구급대원과 소방대원으로 일한다. 그래서 부부는 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길을 걸을 때 보도(步道·인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무단 횡단은 꿈에서도 한 적이 없다. 지영 양도 부모의 마음을 알았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쉴 때면 행여 잠에서 깰까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아이였다.

사고 당일 서 씨는 딸의 손을 잡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다음 날 소풍을 위해 반찬거리를 사오던 길이다. 단지 내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던 모녀를 한 승합차량이 덮쳤다. 엄마는 다친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의식을 잃어가는 딸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했다. 서 씨는 “16년간 구급대원으로 근무했던 내가 눈앞에서 쓰러진 딸을 살리려 CPR를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다친 몸을 치료하고 지난달 초에야 복귀한 서 씨는 “언젠가 다시 현장에서 CPR를 할 텐데 사고를 당한 딸의 얼굴이 떠오를까 무섭다”고 말했다.

사고 후 부부는 사고가 난 현장을 일부러 피해 다닌다. 가까운 정문 대신 멀리 반대편 문으로 출퇴근한다. 서 씨는 “그날 그 횡단보도로 딸을 데려간 내가 원망스럽다. 차를 두고 왜 걸었는지 모르겠다”며 아직도 자책하고 있다. 그는 “죄가 있다면 엄마 손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던 것뿐인 내 딸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아파트 단지 내 구역은 도로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 12대 중과실이 적용되지 않는다. 12대 중과실은 신호위반과 중앙선 침범, 횡단보도 사고 등이다. 현재 가해 운전자의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금고 2년을 구형했다. 전방 주시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다. 서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법이 바뀌어도 물론 우리 딸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 같은 억울함을 이제는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 피와 눈물로 법 고치는 사회

“놀이동산 주차장서 미끄러진 차에 참변… 길 걸을때마다 공포” 故최하준 군 엄마
“놀이동산 주차장서 미끄러진 차에 참변… 길 걸을때마다 공포” 故최하준 군 엄마
하준 군 엄마 고모 씨(36)는 지난달 셋째 딸을 출산했다. 지난해 10월 1일 하준 군이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고 씨는 임신 중이었다.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던 차량이 모자(母子)를 덮치면서 고 씨도 허리를 다쳤지만 무사히 출산했다. 하준 군이 살아있었다면 두 번째 동생을 본 것이다. 고 씨는 아직도 “길을 걸을 때마다 ‘저 차가 날 덮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며 몸서리를 쳤다.

지난달 28일 경사진 곳에 차량을 세울 때 안전 조치를 의무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9월부터 시행된다. 사고 차량 운전자는 주차할 때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하준 군이 사고를 당한 주차장 같은 ‘도로 외 구역’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심지어 이런 곳에서 난 사고는 정식 교통사고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지영 양 사고처럼 운전자 중과실로 인한 사망사고가 나도 처벌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고 씨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교통법과 주차장법을 모두 읽으며 법의 맹점을 찾아갔다. 고 씨는 “1962년 도로교통법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80번 넘게 개정됐다. 그때마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피와 눈물로 고쳐졌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대전·과천=서형석 skytree08@donga.com / 유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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