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다시 나혜석을 생각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작년 이맘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나혜석 거리’에서 친구들과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만 해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같은 거센 바람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성과 위력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여성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나혜석을 떠올립니다.

나혜석(1896∼1948·사진)은 일본 유학파 여류 화가이자 작가로서 봉건적 억압과 가부장권에 맞서 싸운 신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신랑신부’라는 제목과 함께 본인과 신랑의 사진을 실은 1920년 4월 10일자 동아일보 3면의 광고는 한국 최초의 공개 결혼 청첩장입니다. 나혜석은 1934년에 ‘이혼 고백장’이라는 글을 ‘삼천리’에 발표하며 가부장적 속박을 비판합니다. 그녀의 말과 글, 그림은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나혜석은 전근대 사회에 살면서 근대를 넘어 현대의 젠더(gender) 해방을 꿈꿨던 신여성입니다.

지난주 ‘세계 여성을 날’을 맞아 여러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3월 8일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해 1975년 유엔에서 공식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굶지 않기 위해 하루 12∼14시간씩 일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1789년)은 부르주아들에게 선거권을 가져다주었고,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1838∼1848년)은 노동자들의 참정권 확대로 귀결됐을 뿐입니다. 여성들의 권리는 그들 스스로 피 흘려 쟁취했습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혁명 중 ‘여성의 권리 옹호’(1792년)라는 책을 발표하여 “여성도 인간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을 개척하고 세계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루소의 ‘여성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1913년 런던 경마대회에서 국왕 조지 5세의 말이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순간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외치며 질주하던 말을 향해 몸을 던져 자결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서 1918년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아랍 국가들처럼 21세기에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20세기 전반에 실현합니다. 역사적으로 보통선거제도와 대중민주주의 확립에 여성 참정권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관문이었습니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습니다. ‘미투’ 앞에 유력인들이 추풍낙엽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나혜석은 무슨 말을 할까요. 남녀가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며 소통하는 생활세계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여성들의 말과 글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나혜석 거리#나혜석#세계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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