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르포] 우리 아이 학교 석면 위험도는?…잔재물 검사 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17시 26분


“자칫 밟아 바스러지면 공기 중으로 다 퍼져요. 아이들 몸속으로 들어가니 조심합시다.”

1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A초등학교. 마스크를 쓴 일행이 이 학교 4층 복도의 벽면과 창틀을 플래시를 비춰가며 세심히 관찰했다. 이후 물수건을 꺼내 먼지를 닦아냈다. 하얀색 덩어리가 보이자 10㎝ 길이의 날카로운 핀셋으로 집어 신중히 살폈다. TV 속 과학수사대(CSI)가 살인범의 단서를 찾는 모습과 흡사했다.

이들은 교실로 향했다. 칠판과 형광등, 에어컨 틈새의 먼지를 닦아냈다. 먼지로 새까매진 물수건은 조심스레 샘플용 채취 비닐에 담겼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교사들에게 물었다. “이 칠판은 고정형인가요? 아니면 떼어낼 수 있는 건가요? 석면 제거 공사를 할 때 칠판이나 에어컨을 완전히 떼어내 밖으로 뺀 뒤 공사를 하는 것과 설치된 채 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에요.”

● 학교 내 석면 잔재물 검사 현장 가보니

학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석면 위험도가 궁금할 것이다. 이날 A초교에서는 환경보건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이 석면 잔재물 검사를 진행했다. 정부는 방학 동안 전국 초중고에서 석면 철거 공사를 했다. 올해 겨울방학 중 석면 철거 공사를 한 1227개 학교 가운데 무작위로 학교 201곳을 선정해 학부모와 전문기관이 합동 조사한 결과, 43곳에서 석면 잔재물이 검출됐다. A초교 역시 1월 6~28일 석면 철거 공사를 했다. 교실 21곳과 복도의 천장 건축자재(텍스)를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이 텍스에 석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 교실의 교사 사물함을 밀어내자 바닥에서 하얀 조각이 발견됐다. 핀셋으로 이 조각을 책상에 올려놓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석면이 들어있으면 잘 안타요. 석면이 없으면 그냥 종이니 잘 타고요. 석면이든 아니든 석면 철거 공사 이후에 이런 조각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죠.”(최 소장)

하얀 조각은 잘 타지 않았다. 최 소장은 정밀검사를 위해 이 조각을 비닐에 담았다. 이 학교 체육관에서도 석면 잔재물로 의심되는 조각이 발견됐다.

석면 제거 공사 후에도 학교 안에는 석면 부스러기인 ‘잔재물’이 남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겨울방학 동안 석면철거 공사를 한 서울 관악구 인헌초등학교 역시 곳곳에서 갈석면과 청석면 등이 검출돼 개학을 미뤘을 정도다. 당시 정부 조사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환경단체와 학부모의 재조사에서 석면이 나와 사회적 논란이 됐다.

● 1급 발암물질, 석면

석면은 절연성과 내연성이 뛰어나 건축자재로 널리 쓰였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면서 국내에선 2009년부터 일체 제조와 사용이 금지됐다. 그 이전에 지은 학교에는 석면이 든 건축자재가 쓰인 셈이다.

석면은 머리카락의 5000분의 1 가량의 크기로 먼지보다 훨씬 작다. 살짝만 충격을 줘도 공기 중으로 떠올라 24시간 동안 반경 2㎞로까지 날아간다. 석면은 폐에 들어가면 폐포에 박혀 악성종양을 일으킨다. 특히 소량이라도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

1㎖당 석면섬유 개수가 0.1개인 공기에 1년 동안 노출되면 백석면은 약 10만 명당 1명, 갈석면은 10만 명 당 15명, 청석면 10만 명 당 100명가량 악성종피종(악성종양)에 걸린다. 미국 건강영향연구소 실험결과 5시간 수업을 기준으로 연간 180일 가량 1㎖당 석면섬유 개수 0.0005개에 노출되면 100만 명 당 6명 정도가 폐암으로 사망할 수 있다.

● 부실한 철거공사 제대로 관리해야

그렇다면 왜 석면 철거 작업 후 잔재물 검사까지 하는데도 석면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전문가들은 철거 공사 과정이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한정희 위원은 “정석대로 하면 비닐로 교실을 봉쇄하고, 습윤제를 뿌려 남은 석면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압기(석면 철거 작업장 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장치)도 사용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의 세밀한 단속이 없다보니 공사가 부실하게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석면 철거 후 정부의 석면 잔재물 검사는 공기를 추출해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석면은 교실 내 창틀이나 에어컨 틈새, 사물함 사이 등에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석면은 나중에 먼지와 함께 공기로 퍼진다.

학교 석면 철거 관리를 일원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석면 총괄 부처는 환경부다. 하지만 석면 철거 공사를 발주하는 주체는 교육부, 석면 철거 업체 선정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한다. 책임 기관이 모호하다보니 공사 및 사후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너무 낮은 석면 철거 공사 단가를 적정한 수준으로 책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석면 철거 공사의 관리와 감독, 잔재물 조사 방식을 다시 설계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순천향대 이용진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부뿐 아니라 환경시민단체, 학부모 등이 나서서 석면 철거를 다층적으로 점검하는 한편 부실한 석면 철거업체들의 난립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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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복도에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석면 잔재물이 있는지를 핀셋 등을 이용해 세심히 검사하고 있다. 이날 환경단체와 학부모들은 교실 내 칠판 위, 창틀, 에어컨 틈새에 있는 먼지를 채취해 석면이 포함됐는지를 조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1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복도에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석면 잔재물이 있는지를 핀셋 등을 이용해 세심히 검사하고 있다. 이날 환경단체와 학부모들은 교실 내 칠판 위, 창틀, 에어컨 틈새에 있는 먼지를 채취해 석면이 포함됐는지를 조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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