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울지 마세요/춘남이 공부 잘하겠습니다/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서명도 못 하냐고 무시하던 택배 아저씨도/이름도 못 쓰냐고 눈 흘기던 은행 아가씨도/우리 엄마한테 혼났을 낀데’(김춘남 할머니의 시 ‘장하다 우리 딸’·경남 함양군 안의중 성인문해학교)
‘요즘은 알파벳을 배우는데/간판에 있는 알파벳을 나도 모르게 읽고 있는 게 신기하다/한자 한자 읽고 쓰고 익혀가는 게/마치 생강을 심고 갈고 거둬들이는 것 같다’(송순희 할머니의 시 ‘생강 거둬들이듯’·전북 군산시 늘푸른학교)
지난해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당선작인 할머니들의 시를 읽다 보면 압축 성장을 겪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이 겪은 어려움이 나타난다. 금융지식이 부족해 은행 서류를 처리하기 어렵고, 외래어가 남용돼 영어 간판이나 아파트 이름을 읽을 수 없다. 한글을 모르는 문맹과는 다른 ‘신(新)문맹’이라 할 수 있다.
○ 수준1 비문해 인구 전체 성인의 7.2%
지난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만 18세 이상 성인 4004명을 대상으로 전국 성인문해능력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추정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과 셈하는 능력이 부족해 기초적인 일상 문제 해결이 어려운 비문해 인구는 전체 성인의 7.2%, 약 311만 명이었다. 보통 초등학교 1, 2학년 교육이 필요한 수준이다. 오차범위 안이지만 3년 전 조사 6.4%(264만 명)보다 0.8%포인트 증가했다.
비문해 수준은 1수준(초등 1, 2학년 학습이 필요)부터 4수준(중학교 수준 이상)까지 4단계로 나눈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 1∼3수준 비문해 인구는 모두 22.4%로 성인 5명 중 1명이 해당한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혼자 일 처리를 하기 어려운 수준이 포함된 수치다.
비문해 인구는 특히 노년층에 집중돼 있다. 60대 14.2%, 70대 28.7%, 80대 67.7%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급격히 늘어난다. 이세정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정보기술(IT)과 금융 등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노인들의 적응이 쉽지 않다”며 “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대학 진학률이 최고 수준인데 비문해 인구는 줄지 않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서울 및 광역시(5.7%)보다 농산어촌(16.2%)이 비문해 인구가 3배 가까이 높은 이유도 신기술에 대한 노출 빈도가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통장 개설과 약 복용법 배운다
정부는 최근 ‘2018년 성인문해교육 활성화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생활문해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 교통 정보 등 생활문해교과서 3종이 배포돼 있고 약 복용법을 쉽게 설명해 주는 건강문해교과서를 새로 제작한다.
금융문해교과서에서는 ‘여러분이 계 모임 등 모임의 총무가 된 금부자 씨라면 회비 통장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 가지고 갔을까요’라는 생활 속 사례를 들어 통장 개설하는 방법을 쉽게 알려준다. 은행에서 각 사람의 예금을 누구의 것인지 구분해서 보관하는 것을 ‘계좌’, 그 계좌에 돈을 넣거나 찾는 일을 기록하는 장부를 ‘통장’이라 부르는 등 금융 용어도 가르친다.
교통안전문해교과서에는 ‘흰색 바탕에 빨간색 테두리가 있거나, 빨간색 배경은 규제 표지이다. 도로의 안전을 위해 금지되는 행위 등을 알리는 표지판’이라며 안전한 교통생활을 안내한다. 이러한 생활문해교과서는 전화(1600-6759)나 국가문해센터 홈페이지(www.le.or.kr)에서 신청받아 무료로 배포한다. 가족이 대신 신청할 수 있다.
국가문해교육센터는 정보사회에 적합한 문해능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측정 도구를 개발해 배포할 예정이다. 진단 결과에 맞춘 교육 정보도 제공한다. 이번 조사 결과 39.3%가 학습 경로를 ‘독학 또는 가족’이라고 응답함에 따라 개인학습 지원 방안도 마련한다. 이달부터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외래어와 생활어휘를 가르치는 ‘영어과 문해교육방송’(26편)을 EBS에서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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