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에 다니는 윤모 씨(39)는 최근 친구를 만날 때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비혼(非婚) 선언’을 하고 다닌다. 10년째 직장생활을 해 당장 결혼자금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결혼 이후가 두렵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모은 돈을 결혼하고 나서 집 사고 아이 키우는 데 쓸 바에야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가 5.2건으로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윤 씨처럼 결혼을 미루거나 단념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2, 3년 뒤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청년실업이 결혼 기피 초래
통계청은 21일 지난해 전체 혼인건수가 26만4500건으로 2016년보다 6.1%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혼인건수는 1974년 25만9600건 이후 가장 적은 것이다. 1000명당 혼인건수인 조혼인율은 2014년 6.0건을 나타낸 이후 매년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다시 역대 최저치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처럼 혼인이 급감한 것은 고용 상황이 악화되면서 수입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다 집값이 오르면서 안정적인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6년 기준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 국민의 46.0%에 이를 정도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커진 점도 한 원인이다. 국내 20, 30대 절대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구조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혼인 절벽’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지난해 혼인건수 감소는 20대 후반 청년실업률 증가와 전세가격 상승이 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 ‘황혼 결혼’만 증가
전체적으로 혼인이 줄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젊은층의 비혼 현상이다. 지난해 30∼34세 남성 혼인건수는 9만8100건에 그쳤다. 1년 만에 1만1300건(10.3%)이 줄어들었을 정도다. 여성 역시 같은 나이의 혼인건수가 1년 새 9.0% 감소했다. 남녀 모두 공통적으로 20대부터 30대 중반에 걸쳐 급속한 혼인 감소 현상을 보였다.
반면 국내 결혼의 ‘고령화’ 현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남자의 초혼 연령은 평균 32.9세로 1년 전보다 0.2세 높아졌다. 여성의 초혼 연령도 전년보다 0.1세 높아진 30.2세였다.
특히 지난해 남녀 모두 전 연령대 가운데 ‘60대 이상’의 혼인 증가율이 1위로 나타났다. 남자의 경우 지난해 60세 이상 결혼이 5.8% 늘어난 6만 건, 여자는 9.0% 늘어난 3만3000건에 달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 현상에 따라 전체 결혼에서 고령층 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령층 결혼이 늘면서 재혼 연령도 차츰 높아지는 추세다. 1997년만 해도 남성의 평균 재혼 연령은 40.5세, 여성이 35.9세였지만 지난해는 남성 48.7세, 여성 44.4세까지 올랐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재혼 평균 연령이 8∼10세 높아질 만큼 황혼 결혼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출생아 수 더 줄어들 듯
이 같은 결혼 기피 양상은 저출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수도 있다. 이미 전문가들은 올해 출생아 수가 지난해(35만7000명)보다 더 줄어들면서 사상 최저치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2016년 혼인건수가 7.0% 감소하자 1년 뒤인 2017년 신생아 수가 11.9% 감소한 바 있다. 2015년에도 혼인건수가 0.9% 줄자 이듬해 출생아 수가 7.3% 줄었다. 한 해의 혼인율은 그 다음 해 출산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혼인율을 감안하면 올해의 출산 결과는 그 어느 해보다도 나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출산과 육아 중심에서 결혼을 장려하는 쪽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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