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동작구 총신대. 봄옷 차림 학생들로 붐벼야 할 교정은 적막했다. 주차 관리 직원들만 오갈 뿐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본관 앞에는 군데군데 녹슨 컨테이너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본관 출입문은 유리문 두 짝 가운데 한 짝은 쇠사슬로 손잡이 부분을 감아 놨고, 나머지 한 짝도 반쪽만 열고 닫게 해 놨다. 출입문 안쪽에는 수업용 의자 수십 개를 천장까지 쌓았다. 일종의 바리케이드다.
컨테이너박스를 두드리자 한 학생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신분증을 요구했다. 교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줬다. 본관 복도에는 라면, 생수 같은 생필품이 즐비했다. 피난민 대피소를 방불케 했다.
총신대는 ‘전쟁’ 중이다. 배임 증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영우 총장 진퇴를 둘러싼 내홍이 격화했다. 학생들은 김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학교 측은 물러설 뜻이 없다.
총학생회와 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은 지난달부터 교내 본관 등을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했다. 학교 측은 운동장에 화이트보드와 의자를 비치한 천막 10여 동을 치고 수업을 강행했다. 학생들이 학내 전산시스템을 마비시키자 학교 측은 용역을 동원해 전산실 침입을 꾀하다가 충돌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이달 19일 정상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휴교령을 내렸다. 26일 학생과 교수, 교인 500여 명은 학교에서 김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김 총장은 201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부총회장 후보가 되게 해 달라”며 예장합동 총회장에게 20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지난해 9월 기소돼 현재 재판 중이다. 김 총장은 재판에서 “총회장이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해서 병원비와 선교비 명목으로 줬다”고 주장했다.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자는 교원이 될 수 없다’는 총신대 정관에 따르면 총장 연임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김 총장 기소 일주일 전, 기소돼도 교원을 할 수 있도록 정관을 바꿨다. 같은 해 12월 이사회는 김 총장 연임을 결정했다.
학생들은 “김 총장이 임기 연장을 위해 자기 측근들이 장악한 이사회를 움직여 정관을 바꿨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이 같은 갈등에 애꿎은 신입생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총신대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내가 낸 등록금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수강신청도 제대로 못 했다” 같은 글들도 올라오고 있다.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교육부는 21일부터 이사회 운영 등 총신대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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