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회]“마스크? 있기는 한데…” 쪽방촌 노인들 미세먼지 속수무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17시 18분


26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한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걸어가고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26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한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걸어가고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마스크? 있기는 한데 겨울에 써야지. 지금 쓰면 아깝잖아…”

26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서 만난 송모 씨(86)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말투였다. 이날 서울지역에는 초미세먼지(PM2.5) 주의보가 내려졌다. 하지만 송 씨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뿌연 먼지 사이를 뚫고 경로당으로 가고 있었다. 연신 ‘쿨럭’ 소리를 내며 기침을 했다. 가래를 뱉기도 했다.

송 씨는 “몇 천 원짜리 마스크를 어떻게 사? 어디서 갖다 주면 몰라도, 내 돈 내고 살 형편이 돼야지”며 걸음을 재촉했다. 백사마을은 서울의 ‘쪽방촌’ 중 한 곳이다. 이날 1시간 동안 백사마을에서 만난 28명의 노인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4일 시작된 미세먼지가 나흘째 이어지면서 힘든 저소득층이나 야외 근로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경제적 이유로 마스크조차 마련하기 힘들 뿐 아니라 장시간 노출에 대비한 근본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7일 건물 철거 현장에서 한 근로자가 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27일 건물 철거 현장에서 한 근로자가 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27일 서울 동대문구의 5층 건물 공사현장.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와 모래가 뒤섞여 날렸다. 이 곳에서 만난 하청업체 근로자 3명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모 씨(31)는 “이 곳처럼 작은 공사장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달라고 하는 건 딱 눈치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대신 이들은 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수건 한 장은 초미세먼지는 물론 미세먼지(PM10)도 막지 못한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국집 앞에서 만난 박모 씨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배달을 준비 중이었다. 박 씨는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걸로 미세먼지를 막는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어제는 머리가 ‘찡’하고 조금 아프긴 했다”라고 말했다.

27일 서울의 한 거리에서 환경미화원이 겨울용 방한 마스크를 낀 채 청소하고 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27일 서울의 한 거리에서 환경미화원이 겨울용 방한 마스크를 낀 채 청소하고 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환경미화원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서울의 한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인 30대 A 씨는 최근 일회용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 10개를 지급받았다.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가 지급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 하지만 A 씨가 주 6일 일하는 걸 감안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언제 추가로 지급될지 기약이 없다. 혹시나 마스크를 빨아도 봤지만 아예 쓸 수 없게 돼 버려야 했다. A 씨는 “환경미화원 중에는 퇴직 후 폐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꽤 있다. 교통대책도 좋지만 환경미화원에게 마스크라도 제대로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다음 달 중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 경로당 등에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무료로 비치할 계획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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