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열대 기후 상징 ‘담팔수’가 말라죽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소나무재선충같은 병원균으로 枯死… 제주-서귀포시 등 수백그루 제거
도시화와 반복되는 한파도 원인… 제주도, 효과적 방제방안 찾기 고심

제주시 신제주로터리 주변에 가로수로 심어진 40년생 이상 담팔수가 잘려 나가고 있다. 담팔수는 국내에선 제주에만 자생하는데 올겨울 한파 등의 영향으로 최근 말라 죽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시 신제주로터리 주변에 가로수로 심어진 40년생 이상 담팔수가 잘려 나가고 있다. 담팔수는 국내에선 제주에만 자생하는데 올겨울 한파 등의 영향으로 최근 말라 죽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4일 오전 제주 제주시 연동 신제주로터리에서 신제초교 사이 1.8km 구간에 이르는 신대로 일대. 거대한 굉음과 함께 말라 죽거나 회생 기미가 없는 가로수가 잘려 나갔다. 작업 인부 10여 명이 크레인과 기계톱 트럭 등 장비를 동원해 거목을 베어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높이가 15m를 넘고 밑동은 어른 한 명이 두 팔로 안아도 모자랄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이다. 한 그루 제거에만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도로 1개 차로를 통제했다. 이 가로수는 제주의 아열대 기후를 상징하는 담팔수. 일부 지역에서 신목(神木)으로 여기는 상록수이다.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일대 담팔수 자생지는 천연기념물(제163호)로 지정됐다.

이날 제거된 담팔수 8그루 외에도 잎 색깔이 누렇게 변하면서 상록수의 면모를 잃어 가는 담팔수가 곳곳에 있다. 신대로에는 담팔수 13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197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조성된 ‘신제주 건설사업’에 따라 가로수로 심어진 이후 40년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나무들이 시름시름 말라 죽으면서 30여 그루가 잘려 나갔다.

제주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가로수 중 하나인 담팔수 풍경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서귀포시 걸매공원과 신시가지, 제주시 용문로 등에 심어진 담팔수도 맥없이 말라 죽고 있다. 지난해 제주시 86그루, 서귀포시 92그루의 담팔수를 제거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2월부터 국립산림과학원, 전북대와 공동 조사를 벌여 담팔수 고사 원인을 파이토플라스마 병원균에 의한 위황병으로 추정했다. 소나무재선충병처럼 파이토플라스마는 증식을 하면서 양분과 수분 통로를 막아 식물을 고사시키고 곤충에 기생해 다른 나무로 이동한다. 방제시험을 통해 치료제와 영양제 등을 투입했지만 일시적인 회복 증세만 보였을 뿐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겨울을 넘기자 또다시 수십 그루에서 나뭇잎이 말라 떨어지는 고사 현상이 나타났다.

파이토플라스마 감염과 함께 도시화로 악화한 생육환경과 겨울철 반복되는 한파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올겨울 눈이 많이 내려 담팔수 면역력이 크게 낮아진 상태에서 땅속에 잠복했던 병원균이 쉽게 침투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계기관과 담팔수 고사 원인을 규명하고 효과적인 방제 방안을 찾고 있다.

한태완 제주도 한라산연구부 연구사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나무들은 약품을 투입하면 회생하지만 일부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제주 전역에 걸쳐 수세가 약한 일부 담팔수에서 고사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담팔수는 국내에서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희귀목이다. 추위에 약해 내륙지방에서는 월동이 어렵다. 늘푸른나무이면서도 잎이 하나둘 붉고 노랗게 물들면서 잎갈이를 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잎이 떨어질 때까지 색깔이 여덟 번 변한다’는 뜻에서 담팔수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귀포시 천제연 담팔수는 1971년 제주도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으며 돈내코계곡과 안덕계곡, 섶섬 등지에서도 자생 담팔수를 확인할 수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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