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우릴 더 보고싶어 배 못뜨게 하나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9일 03시 00분


26일 오전 7시경 인천 옹진군 백령도 선착장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사흘째 이어진 짙은 안개 탓이었다. 바다 위 여객선의 모습이 흐릿했다.

“해상의 짙은 안개로 여객선 출항이 연기됐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승선을 기다리던 장병과 관광객 등 100여 명이 탄식했다. 이들 사이에 있던 중년남녀 50여 명도 잠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나같이 검은색 정장 재킷이나 점퍼를 입은 일행이었다. 이들은 천안함 폭침 8주기(26일)에 맞춰 24일 백령도를 찾은 전사자 유족이다. 잠시 후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 아들들이 부모 얼굴 더 보고 싶어 그런가 봐요.”

유족의 일정은 당초 1박 2일이었다. 그러나 24일 오후부터 안개가 짙어져 추모식과 해상 위령제를 마치고 25일 섬을 떠나지 못했다. 출항 통제는 27일 오후에야 풀렸다. 생업 탓에 다급할 법도 했지만 가족들은 추가로 얻은 48시간 동안 온전히 추모와 위로의 정(情)을 나눴다.

“오늘은 태민이(고 강태민 상병)랑 진선이(고 장진선 중사)가 우리를 붙잡았나 봅니다.”

언덕을 오르던 유족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강 상병과 장 중사는 시신을 찾지 못한 6명 중 2명이다. 발이 묶인 유족들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하냐. 애들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며 숙소를 나섰다. 소주와 사탕 과자를 챙겨 위령탑으로 향했다. 부조로 새겨진 46용사 얼굴 앞으로 소주 마흔여섯 잔이 놓였다. 추모가 끝나고 유족들은 바다를 향해 전사자의 이름을 외쳤다. 목이 쉬어 탁해진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나왔다.

24일부터 하루에 한 번씩 위령탑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울음이 터졌다. 고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이자 유족회장인 이성우 씨(57)는 “(북한의) 김영철 방남 등으로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지 올해는 다들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중사의 어머니 박문자 씨(55)는 “찾아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엉엉 울었다. 다른 유족들이 그런 박 씨를 안고 함께 울었다.

고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 씨(67)는 27일 오전 바다가 잘 보이는 작은 정자에 올랐다. 유 씨는 천안함 폭침 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앞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유 씨는 “장병들이 ‘천안함 전사자 어머니 식당’이라며 자주 찾아줘 힘이 된다”며 웃었다. 유 씨의 휴대전화 케이스에는 문 원사가 생전 부대원들과 함께 조깅하는 사진이 있다.

이 하사의 어머니 권은옥 씨(54)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휴대전화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권 씨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홀대받는 것이 다 못난 부모 탓이 아닌가 싶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귀한 자식’을 가슴에 묻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면 아픔은 진해진다. 그때는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한다. 손강열(61·고 손수민 중사 아버지) 장만선(60·고 장 중사 아버지) 박봉석 씨(61·고 박보람 중사 아버지)는 26일 저녁 허름한 술집을 찾았다. 손 씨는 “다른 사람과는 이렇게 술 마시고 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술 마시고 웃고 떠들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어서다. 장 씨가 손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특별한 인연이다. 아들을 잃었는데 형님(손 씨)을 얻었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던 손 씨는 사흘간 함께한 기자를 꼭 안아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출항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족들은 “이제 아이들이 길을 열어주나 보다”라고 입을 모았다. 오후 6시 반 유족들을 태운 여객선이 인천항에 도착했다. 마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중국 방문 소식이 화제였다.

유족들은 “정부의 뜻대로 일이 잘 풀리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고 이재민 하사의 아버지 이기섭 씨(58)는 “사람들이 우리를 몰라줘도 괜찮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의 희생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왜곡돼서 받아들여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백령도=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천안함#백령도#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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