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폭로 2개월…“이것도 미투냐?” 여전히 조롱하는 상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9일 15시 04분


YWCA 관계자들이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여 성폭력 관련 집회와 명동 거리 행진, 장미 헌화의 행사를 가졌다
YWCA 관계자들이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여 성폭력 관련 집회와 명동 거리 행진, 장미 헌화의 행사를 가졌다
“나 미투 한다?”

최근 엘리베이터에서 의도치 않게 어깨가 닿은 한 남자 선배가 후배 김모 씨(26·여)에게 말했다. 김 씨는 선배의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부터 사내에는 신체접촉만 일어나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농담이 나오는 분위기가 됐다. 김 씨는 “장난으로 미투를 소비하는 것에 정색하면 예민한 사람이 돼버린다”고 말했다.

사실 김 씨는 매일 아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투’ 해시태그를 게시하는 온라인 미투 운동가다. 그는 “이중인격의 삶이다. 회사에서 미투 폄하에 동조하는 듯한 자신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서지현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의 폭로 이후 미투 운동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직장인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 많다. 온라인 미투 열풍과 다르게 현실에는 ‘미투 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직원들은 온라인에선 활발하게 미투에 동참하지만 사무실로 돌아오면 입을 닫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 “이것도 미투냐” 기존 행태 반복하는 상사들

여직원들은 미투 열풍으로 성희롱 민감도는 늘었지만 사내에 미투를 희화화하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김모 씨(29·여)는 최근 팀장이 “요새 50~60대 사이에서 도는 유머 글이란다 ㅋ”라며 단체채팅방에 올린 글에 어쩔 수 없이 ‘좋아요’ 이모티콘을 보냈다. ‘나무꾼이 베트남 여인과 한국 여인이 동시에 물에 빠지면 베트남 여인을 구한다. 이유는 한국 여인은 손만 잡아도 성추행범으로 오인 받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김 씨는 “회사 전체적으로 ‘여직원들에게 발언 조심해라’는 지시가 돌지만 실상은 미투 조롱이 많다”며 “억압적인 분위기에 미투 관련 대화는 물론 다른 얘기조차 동료들에게 하기 꺼려 진다”고 말했다.

회식자리에서 저마다 미투 감별사를 자처하며 품평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또 다른 김모 씨(26·여)는 최근 팀장이 회식에서 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게재된 미투 글을 읽어주며 “이게 미투라고 생각하냐. 내가 생각하기엔 아니다. 무조건 익명으로 폭로한다고 다 미투가 아니다”고 물어 할 말을 잃었다. 이어 팀장은 “이윤택 사건은 미투가 맞고 안희정은 애매하다. 수사기관에서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미투”라고 말했다. 김 씨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분위기에서 미투 관련 질문 타깃은 여직원이다. 그냥 상사 말이 맞다고 수긍해야한다”고 했다.

● ‘미투천장’ 같은 신조어 등장

이 같은 회사 분위기에 여직원들 사이에선 ‘미투 천장’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인터넷에 정착된 미투 문화가 현실에 적용될 수 없다는 자조적인 의미다. 직장인 박모 씨(30·여)는 “‘미투 천장’은 엄연한 현실이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미투 운동이 활발해도 기존 남성 중심적인 회사 문화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투가 지나치게 사건화 돼 대중이 제3자의 시선으로 인식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윤택, 안희정 등 대형사건이 잇따르면서 미투가 지나치게 사건화 됐다”며 “내 일이 아니리고 인식하는 순간 미투를 바라보는 생각 자체가 가벼워진다”고 분석했다.

폭로 중심적 온라인 미투가 피로감을 유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실 확인 과정 없는 폭로전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남성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진행되는 상황이 아니다”며 “대학에 인권센터가 만들어지듯이 사내 분쟁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구가 상설화 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조유라 기자 ·전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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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8-03-29 20:25:37

    반복해서 말하지만,.. 회식자리,야유회에는 절대 여직원을 끼게하지마라.구설수와 화를 부른다. 같은 식탁에서 점심식사도 먹지마라. 그게 서로를 편하게 하는 것이다. 피곤하게 살지말자.

  • 2018-03-29 22:20:28

    대학교수들이 더럽혀진 순진한 학생들의 미투 말고는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그런 미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우기 제3자의 사주나 당사자의 사심이 들어간 것 같은 변질되고 악용되는 것 같은 미투들도 제법 보인다. 결국 미투라는 것이 정치적 계산으로 시작 된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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