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 씨(38)는 최근 좋아하는 영화 DVD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했다. ‘총알배송’으로 당일 저녁 도착한 택배박스를 열어보니 보호용 포장재인 에어캡(일명 뽁뽁이)이 제품을 감싸고 있었다. 박스 속 빈 공간에는 비닐 에어백이 있었다. 김 씨는 “택배 박스 크기가 최소한 제품의 5배는 돼 보였다”고 말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 근본 이유는 쓰레기 배출량이 급증하는 데 있다. 그 주범 중 하나가 택배다. 많은 택배가 제품 보호를 명목으로 결국 쓰레기가 될 포장지로 겹겹이 싸여 있다. 4일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배출되는 생활폐기물은 2011년 하루 평균 4만8934t에서 2016년 5만3772t으로 늘었다. 이 중 포장 폐기물은 약 2만 t으로 전체 생활폐기물의 약 40%를 차지한다.
○ 규제 사각지대, 택배 포장
택배가 과대 포장의 대명사가 된 것은 관련 규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품의 종류별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환경부령)’에는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 포장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제품 종류별 포장 기준이 있지만 택배로 보낼 때는 예외라는 것이다.
택배업체들은 제품이 훼손되면 반송 문제가 생기는 만큼 에어캡이나 에어백 등을 가득 채워 배달할 수밖에 없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 주로 쓰는 택배용 박스가 3, 4개인데, 제품 크기는 제각각이어서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포장하려면 빈 공간을 에어캡이나 스티로폼, 종이 등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포장 기준이 있다고 해서 과대 포장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자 제품의 경우 △포장 2회 이내 제한 △포장 대비 내용물 80% 초과라는 포장 기준을 적용받는다. 인형 등 장난감은 포장 대비 내용물이 65%를 초과해야 한다. 상당수 과자가 1차 비닐로, 2차 종이박스로 포장돼 있고, 장난감 포장의 빈 공간이 35%나 되는 게 모두 규정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과대 포장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류인 와인은 더 심하다. 포장 대비 내용물이 90%를 초과해야 하는데, 와인 선물세트를 보면 와인 주변 공간이 와인보다 커 보인다. 이런 포장이 가능한 것은 박스 안에 병따개 등 사은품을 넣으면 이 역시 내용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업체는 포장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면 그만이다. 그 대신 쓰레기는 그만큼 늘어난다. 설령 과대 포장이 적발된다 해도 과태료는 최대 300만 원에 불과하다.
○ 전문가들 “소비문화가 바뀌어야”
택배나 선물세트만 문제가 아니다. 당장 식당에서 6000원짜리 제육덮밥을 포장할 때 덮밥을 담는 지름 20cm 원형 플라스틱 통과 김치를 담는 플라스틱 반찬통, 국물용 플라스틱 통 등 3개를 사용한다. 그리고 일회용 비닐봉투에 담아준다. 포장음식 역시 포장 기준이 없다. 환경부는 “가게나 업체마다 양과 포장 방식이 달라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다”며 “다만 테이크아웃 포장 폐기물이 크게 늘고 있어 대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 역시 1인당 420개(2015년 기준)로, 그리스(250개) 스페인(120개) 독일(70개) 등보다 월등히 많다. 정부가 비닐봉투 유상 판매를 현재 마트나 편의점을 넘어 제과점 등으로 확대하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화려한 포장 선호→기업들 과대 포장→폐기물 증가’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비자들이 폐기물을 줄이는 데 관심을 갖고 실속 있게 포장한 제품을 선호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포장을 일일이 규제하고 검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과대 포장된 반(反)환경 제품을 거부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친환경 포장으로 가격을 낮춘 제품이 잘 팔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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