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편백숲으로 유명한 경남 고성군 고성읍 갈모봉에서 등산객들이 삼림욕을 즐기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1960년대 중반 식목일을 전후해 마을 주민이 모두 동원돼 편백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제 그 과실을 함께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3일 오후 4시경 경남 고성군 고성읍 이곡마을 갈모봉 삼림욕장. 23년간 이곡마을 이장을 지냈던 이상원 씨(69)는 하늘로 쭉쭉 뻗은 편백나무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고성읍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사천읍 쪽으로 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왼쪽에 갈모봉(368.3m)이 나온다.
평일인데도 이 삼림욕장엔 방문객이 적지 않았다. 산청에서 왔다는 주부 김모 씨(55)는 “편백림이 좋고 경관도 아름다워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편백 숲으로 유명한 갈모봉이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50여 년 전 산림녹화 사업에 동원돼 장기간 편백을 심었던 이곡마을 주민 55가구 120여 명이 “지금껏 아무런 보상이 없다”며 산림청, 고성군에 ‘품삯을 달라’고 진정했기 때문이다.
주민 대표 제해영 씨(59)는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주민 70여 명이 1966년부터 3년 동안 매년 봄 30일씩 이당리 산 183번지 일원 60ha에 편백과 삼나무를 심었다”며 “당시 구두 약속이지만 조림사업에 따른 수익을 산주는 40%, 식목 참여 주민은 60%를 가져가기로 ‘분수림(分收林)’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이상원 씨를 비롯해 이진덕(80), 이성열 씨(76) 등 주민 20여 명도 ‘증인’이다.
분수림은 산지 소유자와 나무를 심어 가꾸는 사람이 일정 비율로 수익을 나누기로 약속한 산림을 말한다. 수익 배분에 관한 분수 계약도 있었다. 과거에는 산림법 조문에도 분수림 조항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이 일대 임야의 소유권 변경이 잦았던 것도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광복 이후 여러 사람이 소유했던 임야를 1990년대 초반엔 목재공장 대표였던 윤모 씨(73)가 대부분 사들였다. 조림이 상당히 진행된 때였다. 그리곤 2009년 산림청에 일괄 매각했다.
고성군은 산림청과 계약을 맺고 편백림을 관리하고 있다. 조만간 공유지 교환 형식으로 이 임야를 취득해 삼림욕장 조성 등을 통해 체험형 관광단지로 본격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엔 나무를 솎아내는 간벌(間伐)도 했다.
주민들은 2000년대 들어 몇 차례 고성군을 방문해 “분수림 계약에 대한 수익금을 받을 때가 됐다. 관련 서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뚜렷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고성군 관계자는 “1966년의 조림 대장(臺帳)을 어렵게 찾아내 대상 지역과 필지, 동원 인원 등은 확인했다”며 “그러나 분수림 자료는 없었다”고 밝혔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보면 민둥산 녹화를 위해 주민을 동원한 부역(賦役)이 자주 있었을 것으로 추정은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분수림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제 씨는 “주민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갈모봉 편백숲은 탄생할 수 없었다”며 “휴양림에서 수익이 나올 시점이므로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민들에게 직간접적인 환원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앞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주민들은 당국이 수익 환원에 소극적이면 갈모봉 테마관광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것도 불사할 태세다. 유례가 없는 ‘분수림 논쟁’을 갈모봉 아름드리 편백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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