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고지서 수북… 생활고 모녀 죽음 두달간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03시 00분


남편 극단 선택후 채무 떠안아

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여성과 네 살짜리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가 살던 집은 아파트 관리비와 수도·전기요금이 수개월째 연체된 상태였다.

8일 충북 괴산경찰서에 따르면 6일 오후 5시 18분경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서 A 씨(41·여)와 딸(4)이 숨져 있는 것을 119구조대원이 발견했다. 당시 딸은 안방 침대 위에, A 씨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날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A 씨가 4개월째 관리비를 내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119에 신고했다. 경찰은 시신 상태로 볼 때 적어도 2개월 전 모녀가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의 수도 사용량이 지난해 12월부터 ‘0’으로 표시된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말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

현장에서는 ‘혼자 살기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 가족은 2015년 5월 이 아파트(84m²)에 입주했다. 보증금 1억2500만 원에 월세 13만 원짜리 임대아파트였다. 심마니 생활을 했던 A 씨의 남편이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A 씨는 남편과 함께 갚아 나가던 채무를 혼자 떠안고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별다른 소득도 없어 월세는 물론이고 아파트 관리비와 수도 및 전기요금 등이 수개월째 연체됐다.

이날 확인한 A 씨 아파트 1층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와 각종 공과금 체납 고지서가 20통 가까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A 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니었다. 임대보증금이 있고 차량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딸에게 지급되는 월 1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복지단체의 관리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증평군 관계자는 “정확한 채무 상태를 확인해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임대보증금과 소유 차량이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 체납이나 단수, 단전 등의 이상 징후가 없어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망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부채 규모와 남편과의 사별 이후 행적 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모 imlee@donga.com / 증평=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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