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회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책임 통감” 문구 삭제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0일 20시 04분


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첫 회의에서 판사들이 의결한 선언문에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책임을 통감한다”고 적시했다가 나중에 이 문구를 삭제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조사 중인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안을 기정사실화했다가 추후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지웠다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9일 오전 10시부터 점심시간을 포함해 약 12시간 동안 제1차 회의를 진행하며 ‘국민의 법원에 대한 권리와 사법부의 책임에 관한 선언’을 의결했다. 이 선언문은 부의장인 최한돈 판사(53·사법연수원 28기), 권기철(50·사법연수원 28기), 송승용(44·29기), 남인수(44·32기), 류영재(35·40기) 판사가 공동 발의했다. 이 안건은 해당 법관들이 현장에서 결의하자고 제안했고 이날 회의에서 맨 먼저 가결됐다,

선언문은 총 4개 항목인데, 1, 2, 4항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적 가치를 수호한다’ ‘전관예우나 공정성을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한다’ 등 원론적인 내용이다.

판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것은 3항이었다. 내용은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법관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이다. 3항의 내용을 뜯어보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3번째 조사기구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 진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의혹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법관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최종 가결된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빠졌다. 대신 ‘사법행정권 남용이 법관독립 침해 뿐 아니라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향후 유사한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심각하게 훼손된 점’ 등 과거형으로 표현된 문구나 ‘책임을 통감한다’ 등의 내용이 완화된 것이다.

법관들은 대법원장의 권력을 견제한다는 법관대표회의의 본래 의미가 강성 판사들로 인해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법관은 “안건은 일주일 전에 공유돼야 하는데도 당일 아침에 갑자기 발의해 당황스러웠다”며 “조사 중인 사안을 두고 미리 결론을 내는 듯한 뉘앙스를 선언문에 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다른 법관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제에 천착하지 말고 좋은 재판, 대법원장을 견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법관회의는 10일 “법관의 전보인사는 최소화되어야하고 법관의 의사에 기초한 장기근무제도가 시행돼야 한다”며 사실상 지역법관 제도의 부활을 주장하는 내용의 의결안을 발표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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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8-04-10 22:14:44

    멋대로 해라. 4년 뒤에 문정권의 법원 신 블랙리스트로 법원이 해체될 지경에 처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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