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포크로 돈 찍어 원하는 만큼 가져라” 룸살롱서 금수저 행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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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3명 연쇄살인 의혹 崔모씨… ‘6개월 미스터리 행적’ 재구성

일러스트 서장원 기자
20대 여성 세 명이 차례로 숨졌다. 불과 6개월 사이 벌어진 일이다. 이들은 모두 한 남성의 연인이었다. 이른바 ‘세 여친 연쇄 사망 사건’이다. ‘남친’ 최모 씨(31)는 세 번째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 한 여성은 병으로 숨졌고 다른 여성은 시신만 발견됐다. 경찰은 최 씨의 연쇄살인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본보는 경찰 수사기록과 검찰 공소장, 최 씨 주변 인물 18명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다 줄 테니 포크로 찍어서 원하는 만큼 가져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을 찾은 최 씨가 현금 다발을 테이블에 던졌다. 여종업원들이 깜짝 놀라며 포크로 찍어 돈을 챙겼다. 평소 주변에 “나는 금수저”라고 말하던 최 씨는 이런 식으로 수백만 원을 하룻밤 술값으로 썼다. 도박으로 돈을 날려도 금세 어디선가 판돈을 구했다. BMW와 아우디 등의 고급 세단이나 슈퍼카를 번갈아 탔다. 최 씨의 ‘금수저’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22일 경기 부천시의 한 모텔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병원에서 눈을 뜬 최 씨 앞에 형사들이 있었다.
최모 씨(31)가 지난해 10월 말 자신의 지인에게 “도박을 하고 있다”며 보낸 사진.
최모 씨(31)가 지난해 10월 말 자신의 지인에게 “도박을 하고 있다”며 보낸 사진.

○ “옛 여친 욕하자 욱해서 살해”

자살 기도 사흘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원룸에서 정민지(가명·23·여)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근처 폐쇄회로(CC)TV에는 최 씨가 정 씨 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찍혔다. 그해 성탄절에 퇴원한 최 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최 씨는 당시 정 씨로부터 “술값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다고 한다. 사건 전 최 씨는 정 씨가 일하던 한 룸살롱에서 163만 원어치의 술을 마셨다. 당시 가까운 사이였던 정 씨가 결제했다. 정 씨는 평소 최 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빌려주기도 했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최 씨가) 중국으로 밀항하려 한다”는 말을 들은 정 씨는 최 씨에게 술값을 요구했다. 최 씨는 “돈을 주겠다”며 정 씨의 집을 찾았다. 바로 그날 최 씨는 정 씨의 목을 졸랐다.

최 씨는 정 씨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를 훔쳐 달아났다. 훔친 카드로는 장난감을 샀다. 최 씨에겐 다섯 살 아들이 있다. 최 씨의 어머니는 “택시 운전사가 오더니 ‘아드님이 전해달라고 했다’며 손자에게 줄 장난감을 건넸다”고 말했다.

최 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그는 경찰에서 “정 씨가 전 여자친구를 비하하는 욕설을 했다.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최 씨가 말한 ‘전 여친’은 박수정(가명·23·여) 씨다. 박 씨는 정 씨가 살해되기 6개월 전인 지난해 6월 병원에서 숨졌다. 두 여성은 경북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최 씨가 정 씨를 처음 만난 곳도 ‘전 여친’ 박 씨의 빈소였다.

○ 동거녀 쓰러진 날, 단둘이 있었다

최 씨 이력만 놓고 보면 ‘금수저’라는 걸 믿기 어렵다. 그는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했다. 2011년부터 경기 의정부시에서 이른바 보도방을 운영했다. 노래방에 여종업원을 보내는 일이다. 박 씨는 최 씨의 보도방에 있던 종업원이었다. 지인들에 따르면 2015년부터 두 사람은 연인이 됐고 사실상 동거 생활을 했다고 한다.

박 씨는 지난해 6월 1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숨졌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뇌출혈. 처음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박 씨는 살아 있었다. 당시 병문안을 했던 박 씨 친구는 “(박 씨의) 눈이 감겨 있었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말했다. 입원 나흘 뒤 박 씨는 숨을 거뒀다. 당시 박 씨의 사망 경위에 의심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부검도 하지 않았다. 시신은 화장됐다.

6개월 후 최 씨가 살인 혐의로 구속되자 경찰은 박 씨의 타살 가능성을 재조사하고 있다. 박 씨가 쓰러지던 날 의정부의 한 모텔에 두 사람만 있던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최 씨는 “(박 씨가) 머리가 아프다고 해 등을 두드려 줬는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주변에 말했다. 또 다른 지인에게는 “(박 씨가) 화장대에서 머리를 말리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고 했다.

박 씨의 의료기록에는 외상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도 “타살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박 씨 외삼촌은 “당시 의사로부터 ‘(박 씨와 같은) 뇌출혈 사망이 일어날 확률은 1만분의 1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누나(박 씨 어머니)가 충격이 커 부검을 못 한 게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 실종 수사 시작되자 “밀항하겠다”

지난해 6월 박 씨 장례 후 최 씨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약 한 달 뒤 최 씨는 5000만 원가량이 든 가방을 들고 의정부 유흥가에 나타났다. 최 씨는 “람보르기니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샀는데 거기 투자했던 돈을 돌려받았다”고 주변에 말했다.

최 씨가 모습을 드러내기 며칠 전 의정부에서 유흥업소 여종업원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최 씨의 보도방 종업원이던 장지혜(가명·21·여) 씨다. 지인들은 “장 씨는 2016년 최 씨와 짧게 교제했던 사이”라고 전했다. 이때만 해도 장 씨 실종을 최 씨와 연결짓는 사람은 없었다. 최 씨 지인들은 “대부분 장 씨가 보도방 일이 싫어 잠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씨의 어머니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보도방 업주이자 옛 남자친구인 최 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 무렵 최 씨는 휴대전화를 끈 채 자주 잠적했다. 어쩌다 지인을 만나면 “중국으로 밀항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원 없이 돈이라도 다 써보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경찰은 장 씨가 실종 직전 지인에게 2000만 원을 빌린 사실을 확인했다. 돈의 행방은 묘연했다. 결정적 단서는 인천의 한 렌터카업체에서 발견됐다. 장 씨는 지난해 7월 중순 이곳에서 K5 승용차를 빌렸다. 그런데 반납자는 장 씨가 아닌 최 씨였다. K5는 스팀세차까지 말끔히 마친 상태에서 반납됐다. 경찰은 이 차량이 경기 포천시의 한 야산을 오간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달 중순 이 야산에서 얇은 옷차림의 장 씨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실종 8개월 만이다. 국과수 부검 결과 장 씨의 사인은 외부 충격에 의한 머리 손상이었다.

최 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최 씨가 지난해 12월 정 씨를 살해한 혐의로 이미 구속된 것이다. 최 씨는 실종신고가 접수된 지난해 11월부터 수사망을 피해 다니다 한 달 만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 “나 혼자가 아니다”라며 공범 암시

최 씨는 12일 본보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당시 K5 차량을 나 혼자만 운전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포천까지 간 것은 맞지만 공범이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최 씨가 직접 공범 가능성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그는 장 씨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모 씨(31)가 최근 동아일보 기자에게 보낸 편지
최모 씨(31)가 최근 동아일보 기자에게 보낸 편지
경찰도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수사했다. 이달 초 경찰은 체포영장을 집행해 최 씨를 조사했다. 그러나 최 씨는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최 씨 측에 따르면 그는 경찰 수사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실제 경찰의 질문에 최 씨는 제대로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이 추가로 확보한 증거를 제시하면 최 씨는 “이것까지 확인하느라 수고하셨네”라고 대꾸한다. 경찰 관계자는 “공범 가능성도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정부=황성호 hsh0330@donga.com·김정훈·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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