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은 충무공이 처음 시도한 근접 화공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8일 03시 00분


제20회 이순신 학술세미나… 전술과 승리요인 등 분석

노량해전은 이순신이 최초로 ‘근접 화공전’으로 일본 수군을 대패시킨 전투라는 분석이 나왔다. 순천향대 제장명 이순신연구소장은 17일 이 연구소 주최 제20회 이순신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 ‘노량해전의 승리 요인에 대한 몇 가지 관점’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그는 “노량해전은 최대의 승전이었지만 이순신이 순국하는 바람에 전사 상황에만 초점이 맞춰져 전투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연구의 배경을 밝혔다.

노량해전은 1598년(선조 31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조명(조선-명나라) 연합 수군과 일본 수군이 정유재란의 명운을 걸고 싸웠던 전투. 논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 수군은 500척(주력 300척), 조선 수군 60여 척, 명 수군 400척(소형). 포위를 당하면 속수무책일 상황에서 이순신은 그의 전투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근접 화공전을 구사했다. 제 소장은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넒은 바다에서 일본 수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포위를 당해 패배했던 칠전량 해전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순신은 관음포 같은 좁고도 바람을 등질 수 있는 포구로 일본 수군을 유인한 뒤 분통과 화전 같은 명나라의 우수한 화공 무기를 동원해 일본 전함을 불태웠다. 이순신은 탁월한 외교술로 전투에 소극적이고 공로만 탐하는 명 수군 도독 진린을 적극적으로 전투에 끌어들였다. 신뢰의 리더십으로 수군 장졸들이 너나없이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게 했다.

제 소장은 “노량해전의 승인은 효과적인 조명 연합작전, 우수한 전선과 무기체계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이순신의 탁월한 전술이 이를 하나로 묶어냈던 전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이순신 순국 7주갑(420년)을 기념해 ‘노량해전과 불멸의 리더 이순신’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송은일 박사가 ‘정유재란 시기 명 수군의 참전과 예(왜)교성 전투’, 순천향대 중문과 박현규 교수가 ‘명실록(明實錄) 중 노량해전 전적(戰績) 기록에 대한 분석’, 임원빈 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가 ‘이순신의 사생관과 순국의 의미’에 대해 발표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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