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현직 승무원 A 씨는 22일 이른바 ‘VIP 수행 체크리스트’ 자료를 설명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VIP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총수 일가를 일컫는다. A 씨가 언급한 DDY는 조 회장을 가리키는 코드명이다.
자료에는 비행기 또는 차량으로 수행할 때 직원들의 행동지침이 담겨 있다. 지침은 7개 항목별로 나뉘어 있고 세부항목이 50여 개에 달했다. 기업 총수에 대한 기본 의전을 넘어 시시콜콜한 내용이 눈에 띈다. △좌측 전방 1보 앞서 동행하며 안내할 것 △VIP를 주차장으로 안내하는 것은 결례 △운전은 두 손으로 할 것 △이동경로 주변 음식점 정보와 음식 특성·가격 숙지 △호텔 사전 답사 △항공기 출발 후 30분 이상 공항 대기 △VIP 필요를 채워주려는 마음 자세 △잘못된 점 시인하기 같은 내용이다. 이행 여부를 Y(YES), N(NO)으로 표시하게 돼 있다.
자료는 수년 전부터 팀장을 거쳐 현장 승무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2013년경부터 위에서 내려온 수행지침을 봤다. 당시 한 선배가 빠짐없이 지침을 외우라고 했다. 이런 것 때문에 악습이 되물림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승무원 B 씨는 “그런 지침도 아무 의미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침을 따라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B 씨는 새로운 사례를 털어놨다. 2014년 유럽행 비행기에 탄 이 이사장이 기내 면세품을 구입했다. 지침에는 ‘이 이사장이 면세품을 사면 결제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B 씨의 동료는 지침대로 면세품 결제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이사장은 버럭 화를 내며 막말과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과잉 의전 탓에 휴일까지 반납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객실 승무원 C 씨는 “3, 4년 전 (삼남매 중) 한 명이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한다는 연락이 왔다. 쉬는 날인데 불려나가 매뉴얼 암기를 강요받았다. 한 여성 임원이 ‘VIP는 콜라를 좋아하고 커피에는 어떤 걸 넣어야 한다’고 가르쳐 속으로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발음까지 교정받았다”라고 밝혔다. 직원들의 익명 애플리케이션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비슷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직원들의 폭로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확인해 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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