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에 출근하면 하루 한두 번은 이런 말을 듣는 32주 차 임신부입니다. 동료들은 몇 달 새 배가 뿔룩 나오고 살이 오른 제가 신기한지 볼 때마다 외모에 관해 한마디씩 합니다. “안 돼”라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팔을 쑥 내밀어 제 배를 쓱쓱 만지기도 하고 “엄청 투실투실해졌네. 우량아를 낳으려나 봐!” “뒤에서 보고 몰라봤잖아!” 하며 불어난 체격을 두고 품평을 하죠.
물론 제게 관심을 나타내려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종종 우울해요. 동료들은 한 번씩 하는 말이지만 전 하루에도 몇 번씩 ‘살쪘다’는 말을 듣는 셈이니까요. 제 몸의 변화가 저조차 익숙지 않고 저도 여자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제 배를 만지는 손길도 불편하고 당황스러워요. 임신부가 아니었다면 누가 제 배를 이렇게 만졌겠어요.
낳고 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다른 여자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저보다 2년 먼저 출산한 한 동료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대요. 중년의 남자 부장이 가슴을 쳐다보며 “애가 젖은 잘 빠니?”라고 했다는 거예요. “미스 때는 잘 꾸미고 다니더니 김 대리도 이젠 어쩔 수 없는 아줌마네”라고도 했대요. 정말 ‘뜨악’하더라고요. 그런데 부장님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누구 엄마’가 되고 나면 저란 사람은 사라지는 걸까요? 누구보다 예민한 임산부를 배려하는 예절, 저출산 시대에 무엇보다 절실하지 않을까요.
■ 여자는 출산 도구? 우울해져요
합계출산율 1.05명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임산부는 흔치 않은 존재다. 그만큼 주변의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순수한 호기심이나 관심에서 임산부의 신체 변화나 건강, 아이의 상태 등을 두고 얘기하다가 뜻하지 않게 ‘실례’를 범할 수 있다.
6년 전 출산한 강모 씨(35)는 임신 기간 내내 자신의 몸에 대한 ‘품평회’가 열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늘 제 몸을 화제로 삼았죠. ‘배가 너무 작은 것 같다. 아기도 작은 것 아니냐’ ‘옷이 너무 붙는다’ ‘앞머리가 다 빠졌네’ 등등….” 김 씨는 “일반 여성에겐 감히 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을 임산부에게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 시댁 행사에 참석했다가 아기 수유를 위해 혼자 방에 들어간 이모 씨(33)도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수유 중 어린 조카들이 문을 열고 들이닥친 것이다. “불쑥 들어온 시고모님께서 ‘아기가 너무 예뻐 애들이 젖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네. 봐도 괜찮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아이들이라지만 어떤 여자가 자신의 늘어진 뱃살과 가슴을 보여주고 싶겠어요?”
회사원 강모 씨(33)는 “시어머니께 ‘엄마의 가슴은 아기의 밥통’이란 말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강 씨는 “가족들 앞에서 편하게 수유하라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시어머니께서 ‘주변 개의치 말고 아기에게 따뜻한 젖을 먹이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여성의 가슴을 마치 아기의 ‘보온밥통’처럼 여기시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임산부들은 또 다른 고충을 토로한다. 임산부는 ‘애국자’란 말까지 듣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조직 내에서 임신과 출산을 ‘민폐’로 여기는 시선이 적지 않아서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두고 ‘쉬러 가니 좋겠다’고 말하거나 임신 중 단축 근무를 ‘편하겠다’고 표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임신 7개월째인 정모 씨(30)는 “만약 가까운 사람 중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고생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봤다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며 “임신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낮은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는 유독 여성의 신체에 대한 언급이나 불쾌한 접촉에 관대한데 임산부에 대해서는 더욱 심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임신과 출산을 ‘가족의 대를 잇는 수단’이나 ‘국가의 동력’으로 여겨 온 유교적 전통사고와 무관치 않다.
같은 연구원의 신윤정 연구위원은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에서 임신은 여성의 의무였기에 정작 그 주체인 여성에 대한 배려와 예절이 무시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 최혜진 씨(33)는 “미국에선 임산부에 대한 자리 양보는 물론이고 유리문을 열어주거나 흡연자가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는 등 누구나 자연스럽게 임산부를 배려한다”고 말했다.
임산부들을 오랫동안 상담해온 장순상 필가태교연구소장은 크고 형식적인 배려보다 작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임산부들과의 ‘대화 팁’을 소개했다. “임산부들은 여러 고충과 호르몬 변화 등으로 예민한 만큼 같은 말이라도 ‘살쪘다’보다는 ‘아기가 많이 컸다’고 하는 게 좋아요. ‘옷이 붙는다’보다 ‘엄마 예쁜 옷 많이 사야겠다’고 에둘러 말하는 등 상대방을 배려해서 순화해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쉰다’ ‘편하겠다’ 등 임신과 출산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은 절대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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