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면 실례… 뭐라고 부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0일 03시 00분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8>100세 시대 ‘젊은 노인’ 호칭



■ 60대인 나를 꼬부랑 노인 취급해 불쾌


“아유, 나 원 참 불쾌해서….”

얼마 전 외출을 다녀오신 어머님이 상기된 얼굴로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아주 기분 나쁜 일을 당하셨다는 겁니다.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러시더군요. “아니 글쎄, 나보다 다섯 살 정도밖에 안 어려 보이는 여자가 나한테 ‘할머니! 길 좀 물을게요’ 하는 거 아니겠니.”

67세인 어머님은 자신을 할머니라고 부른 그 행인을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저도 맞장구를 쳐드렸지만 솔직히 의아했어요. 저희 어머님, 손자가 4명이니 진짜 할머니 맞거든요. 조심스럽게 “그렇게 기분 나쁘셨느냐”고 묻자 다시 한번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노인의 기준이 65세인 것도 잘못됐다면서요.

그러고 보면 74세인 아버님 역시 스스로를 노인이라기보다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시는 듯해요. 지하철 노약자석에 자리가 나도 절대 앉지 않으시더라고요. 할아버지라는 호칭도 물론 싫어하시고요. 100세 시대, 노인의 기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 젊게 사는 실버족 호칭 바꿔보면…

한국에서 법으로 정한 노인은 만 65세 이상이다. “난 젊다”며 아무리 저항해도 피할 도리가 없다. 다만 이 기준은 1964년부터 55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기대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반세기 전 기준을 그대로 들이대니 ‘젊은 노인’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에 사는 이숙자(가명·73·여) 씨는 집 근처 노인종합복지관 대신 마을버스를 타고 여성회관까지 가 노래를 배운다. 이 씨는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노인복지관에 가면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미자 씨(69·여)는 “지하철의 노약자석과 일반석 구분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약자석에 앉을 때마다 ‘내가 벌써 노인인가’ ‘왜 노인들을 한구석에 몰아넣나’ 싶어 서글퍼집디다. 그래서 일반석에 앉으면 이번엔 젊은이들이 ‘왜 여기에 앉나’ 눈치를 주는 것 같아 영 불편해요.”

노인에 대한 규정과 호칭이 못마땅하기는 남성 노인들도 다르지 않다. 한기정 씨(76)는 “‘어르신’이라는 호칭도 듣기 거북하다”고 했다. 그는 “60세만 넘겨도 장수했다고 여긴 조선시대에나 65세 이상이 노인이지 지금이 어디 그러냐”며 “내가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은 80대 중반 이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78.3%는 적정한 노인 연령 기준이 70세 이상이라고 답했다.

노인들의 인식은 빠르게 변하는데 사회적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니 당장 호칭부터 꼬이기 일쑤다. 노인들을 자주 접하는 공무원이나 서비스직 직원들은 호칭 고민이 만만치 않다. 2004년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민원인 호칭 개선안을 발표해 연령과 상관없이 모두 ‘고객님’이라고 부를 것을 권장했다. 호칭으로 인한 복잡한 판단을 미루고 민원인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시민들을 고객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산하 25개 자치구 민원실에 따르면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호칭은 ‘OOO님’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방의 나이를 어림짐작으로 미루어 ‘어르신’ 등으로 불렀다가 낭패를 볼 수 있는 만큼 판단을 배제하고 민원인의 이름에 ‘님’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안면이 있는 나이 지긋한 주민이라면 ‘선생님’ 또는 ‘어르신’ 등으로 상황에 맞춰 혼용해 부른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떤 호칭을 원할까. 50∼80대 회원들로 구성된 독서모임 ‘메멘토모리’ 멤버인 고광애 씨(81·여)는 “모임에서도 호칭 얘기가 몇 번 나왔는데 대안이 마땅치 않더라”라고 했다. “우리도 ‘미즈(Ms·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여성의 이름이나 성 앞에 붙여 부르는 경칭)’ 같은 표현이 있으면 좋은데 없어요. ‘선생님’은 중국식 표현 같고 프랑스어인 ‘마담’은 술집 마담 같고…. 우리끼리는 ‘누구 엄마’ ‘누구 할아버지’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자고 했어요.”

‘60대 노파’라는 표현을 자주 쓰던 1990년대에는 노인을 일컫는 예의바른 호칭의 대안으로 ‘어르신’ ‘노인장’ ‘노형’ 등이 거론됐다. 노인장이나 노형은 분명 높임말임에도 한 노인에게 노인장이라고 했다간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국립국어원은 젊은 노인을 호칭하는 말로 ‘선생님’을 추천했다. 국어원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중국식이라는 건 오해”라며 “조선시대에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생이란 표현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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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imsun@donga.com·노지현·황태호 기자
#할머니#실례#젊은 노인#호칭#100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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