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는 ‘혼밥’, 혼자 술 마시는 ‘혼술’ 등 나 홀로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가 여행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훌쩍 떠나는 ‘혼행’(혼자 여행)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여행 동반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혼자 머릿속을 정리하고픈 사람들이 늘면서 홀로 훌쩍 떠나 새로운 것을 접하고 오는 혼행이 국내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 국내 여행, 3명 중 1명은 혼행족
1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6년 국민여행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행객 중 혼자서 국내 여행을 다녀온 비율은 34.5%다. 국내 여행을 떠나는 3명 중 1명꼴로 혼행족인 셈이다.
혼행이 확산한 데에는 혼자 여행하는 것에 거부감이 줄어든 데다 ‘혼행족’을 보는 시선도 우호적으로 바뀐 게 큰 영향을 미쳤다. 21만 명이 가입된 인터넷 카페 ‘나홀로 여행가기 나만의 추억만들기’를 운영하고 있는 이주영 작가는 “10년 전 카페가 생길 무렵엔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워낙 소수라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선도 있었다”며 “지금은 혼자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혼행족들은 이름난 유명 관광지를 빡빡한 일정으로 둘러보기보다는 마치 그 지역의 주민처럼 해당 지역의 카페와 서점, 전통시장 등 일상을 즐기고 오는 이들이 많다.
2월 말부터 90일간 혼자서 국내 여행을 하고 있는 강수정 씨(22)는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혼행족은 거의 못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군데를 가보겠다고 욕심을 내기보단 카페나 공원 등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방인이지만 동시에 지역주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강 씨가 이처럼 홀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리고 있는 건 한국관광공사의 프로그램 ‘나를 찾아 떠나는 90일간의 여행’에 최종 선정된 덕분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주로 혼행을 다녀온 회사원 주모 씨(33)는 “혼행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필요 없이 실컷 늦잠을 자고 가볍게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KTX 당일치기부터 배낭 트레킹까지
혼행 초보자라면 우선 쉽게 가볼 수 있는 곳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자동차가 없는 ‘뚜벅이 여행객’이라면 고속철도(KTX)로 닿을 수 있는 지역부터 도전해보자. 최근 혼행족에게 인기 있는 곳은 강원 강릉이다. 지난해 12월 서울∼강릉을 잇는 KTX 강릉선이 개통해 서울에서 2시간 정도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해변에서는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혼행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남 순천만 생태공원에서 해넘이 감상하기, 경북 경주시의 동궁과 월지·첨성대의 야경 보기 등도 초보 혼행족이 KTX를 타고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여행지다.
혼자서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강원 고성군의 화암사 신선대, 충북 단양군의 새한서점을 추천한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관광공사가 뽑은 ‘TV 속 여행지’ 중 ‘혼자여서 더 좋은 여행지’들이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온 화암사 신선대는 울산바위 등 압도적 규모의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새한서점은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조승우와 이병헌이 머물렀던 장소다.
혼자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트레킹을 즐기고 싶다면 전남 여수시 하화도를 추천한다. 동백과 진달래가 지천에 핀 하화도는 트레킹족들에게 인기 만점인 곳이다. 여행책 ‘섬이라니, 좋잖아요’를 쓴 김민수 작가는 “하화도의 꽃섬길을 혼자 찾는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배낭에 쏙 들어갈 정도로 캠핑 장비도 간소화되면서 야영장을 찾는 혼행족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6km 거리의 섬둘레코스를 걷다보면 구름다리인 ‘꽃섬다리’ 등도 나온다.
혼행 전문가들은 즐거운 혼행을 위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조언했다. 혼자 가는 여행인 만큼 만약의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여행 목적지나 숙박지 주소를 미리 알려주고 떠나는 게 좋다. 이주영 작가는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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