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잔디의 품질 인증제를 놓고 관련 업계와 K리그 연맹(한국프로축구연맹) 간 주장이 첨예하다. 기존 인조잔디 관련 업계에서는 이미 정착된 인증제도가 있는데 굳이 새로 도입해 과다한 승인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연맹 측은 고품질의 인조잔디 축구장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고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는 입장이어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각종 리그를 주최하는 연맹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앞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인조잔디는 사실상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 기준을 통과해야만 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축구 그라운드용 인조잔디 제품 중 연맹이 정한 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과 경기장에 한해 K리그 인증을 부여하게 된다. 연맹은 올해부터 새로 도입한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를 통해 품질 기준을 높일 예정이다. 이로써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는 연맹의 중점 ‘사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미 국내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제정한 ‘KS 인증제도’가 있다. 또 국제적으로는 ‘FIFA(국제축구연맹) 인증제도’가 통용되고 있다. ‘KS 인증(KS F 3888-1, 실외체육시설-인조잔디)제도’는 2010년 제정돼 2011년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8년간 시험 항목이나 방법 등의 개정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국가기술표준원에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규격과 인증을 시행하기 위한 과정을 모두 거쳐 관공서의 입찰뿐만 아니라 민간 공사에서도 ‘KS 인증’은 품질 규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가표준의 인조잔디 ‘KS 인증제’
‘KS 인증’은 인조잔디의 세 가지 공정 중에서 ‘제직(직물을 짜임)’을 기본 조건으로 특정 수준 이상의 제품 품질 유지 능력에 관한 전반적인 품질 인증이다. 또한 인조잔디를 용도와 형태에 맞게 5개 군으로 나누는데, 각 군의 특성에 맞는 품질 규격을 명시하고 있다. 세부 기준으로는 인조잔디 매트, 충진재, 충격흡수패드 등 개별 자재의 품질과 유해성 기준 그리고 모든 구성품의 결합체로서의 엄격한 품질 기준이 적용된다.
국제적으로는 유명한 FIFA 인증이 있다. 이는 축구경기장에 적합한 수준 이상의 인조잔디를 대상으로 한다. 품질 기준에 적합한 제품이 설치된 구장에 한해서 현장 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해당 구장에 발급되는 형태이다. 등급은 ‘FIFA Quality’와 ‘FIFA Quality Pro’로 나누고 있다. 실제로 100%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가 섞인 구장에서 공식 경기를 치른 사례도 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축구대회’는 FIFA 인증을 받은 인조잔디에서 펼쳐졌다. 회복력을 높이고 배수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천연잔디와 인조잔디의 복합 형태로 꾸며졌다.
인조잔디 구장이 FIFA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잔디패드의 인장 강도 또는 구장 사이즈, 볼 바운딩 등을 체크하여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승인이 내려진다.
국내 인조잔디 관련 중소기업들은 “국제적인 FIFA 승인보다 더 강화한 국가표준의 KS 인증을 신뢰하고, 그 기준에 부합한 인조잔디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며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의 시행은 지금까지 쌓아온 경쟁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관련 중소업체들을 도산 위기의 길로 만드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에 따라 새로 인증을 받으려면 인조잔디 생산업체들은 우선 매트 가공건조기를 확보하여야 한다. 또 연간 원사 500t 이상, 백코팅 원료 250t 이상 사용 실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내수 물량의 20배에 달하는 양을 수출해야만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매출 상위에 속하는 극소수 업체만이 가능한 기준이며 그 기준에 맞춘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구매실적은 FIFA 등 전 세계 어디에도 인증 요건으로 정한 바가 없다. 더구나 이러한 기준이 인조잔디 제품이나 구장의 품질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도 의문스러운 상황”이라며 “품질기준 또한 비공개로 하여 공인제도의 취지에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중복 인증제는 ‘규제 위한 규제’, 중소기업 상생과 엇박자
이에 K리그연맹 측은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를 새로 도입한 배경에 대해 “K리그 경기가 천연잔디구장에서도 열리지만 프로 산하 18세 이하(U-18) 팀 리그인 K리그 주니어 등 아마추어 학생 대회는 주로 인조잔디 위에서 펼쳐진다”면서 “그런 만큼 축구 유망주들의 부상 방지와 기량을 향상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발표한 논문(운동학 학술지 제13권 제1호, ‘인조잔디와 천연잔디 축구경기장에 따른 미끄럼 및 태클의 양상 분석’) 자료에 의하면 인조잔디와 천연잔디에서의 미끄럼 빈도와 태클 빈도에 대해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축구경기의 비디오 분석을 통해 경기장 표면에 따른 중학생과 대학생 선수의 미끄럼 및 태클 양상, 포지션, 미끄럼 상황, 미끄럼 패턴별로 인조잔디와 천연잔디가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것이다. 이 논문은 지금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상해 예방의 근거자료로 제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의 주요 규정들(설비요건 및 백코팅, 원사 사용실적 요건, 제품 봉합 방식 등에 관한 요건)은 ‘FIFA 인증’(제품, 구장) 관련 제도에는 전혀 규정되지 않은 것으로써 국제공인 규정을 벗어난 신설 조항에 해당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 이들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도입한 공인제도가 K리그 연맹 및 사단법인 대한축구협회의 정관에도 위배되는 사항이라고 따졌다.
정관에 따르면, 국제공인 규정을 벗어난 공인요건을 신설하거나 특정 업체의 제품 사용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공인료도 필요 이상으로 부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과도한 설비요건과 원자재 구매실적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에 대해 이는 사실상 특정 업체 제품 사용을 강요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3억 원에 달하는 공인료도 업계 현실을 외면한 고액의 책정가라며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는 새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역행하는 과잉, 중복 인증제도로서 이른바 ‘규제를 위한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비영리단체인 K리그 연맹이 단체의 사익을 도모하기 위해 과다한 인증료를 수수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 과연 누구를 위한 공인제도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