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여행] “외국인 발길도” DMZ투어는 급증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일 17시 23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비무장지대(DMZ) 투어 신청이 5배 넘게 늘었습니다. 평소엔 매표소 앞에 휑했는데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1일 오전 8시 50분경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만난 관광버스 운전사 박모 씨(60)의 말이다. 매표소는 오전 9시에 열리지만 관광객 100여 명은 이미 줄을 서있었다. 임진각 DMZ투어는 평화누리공원을 출발해 도라산전망대~제3땅굴~도라산역~통일촌을 약 2시간 반 동안 돈다. 군사지역이어서 지정된 45인승 버스로만 이동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DMZ 안보 관광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 DMZ투어에 외국인 발길도 급증

이날 표가 일찍 매진돼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종종 보였다. 경기 부천에서 온 고형석 씨(51)는 “정상회담을 보고 관심이 생겨 가족들과 찾았는데 표가 없어 무척 아쉽다. 다음 주에는 좀 더 일찍 와야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도 평소보다 네댓 배 늘었다고 한다. 이날 동아일보 기자가 올라탄 45인승 투어버스 탑승객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이들은 민간여행사를 통해 DMZ투어를 신청했다. 오전 8시경 서울 도심을 출발해 투어를 마치고 오후 2시경 다시 서울로 가는 ‘한나절 코스’가 일반적이다. 다만 판문점 투어는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그전부터 출입이 중단된 상태다.

DMZ 투어를 하려면 신분증이 필수다. 헌병이 직접 버스에 올라 일일이 여권을 확인하자 외국인들은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용사라는 미국인 샌드 스미스 씨(59·여)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참전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처음으로 남북이 맞대고 있는 DMZ를 찾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 ‘찍고 오기 식’ 투어는 지양해야

하지만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투어 프로그램의 운영 수준이 낮고 콘텐츠가 빈약해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투어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주마간산 식이라고 말했다. DMZ투어에서 한 장소에 머무르는 시간은 15분 남짓. 그 지역을 충분히 보고 느끼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도라산역에서는 기념도장(스탬프)을 찍으려고 줄만 서 있다가 버스로 돌아가는 관광객이 많았다. 미국인 조지 패드코스키 씨(33)는 “투어를 하며 가이드의 ‘빨리, 빨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여기저기 허겁지겁 다니기만 하지 DMZ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가이드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파주시 소속 문화관광해설사 A 씨는 “일부 가이드는 틀린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38선과 군사분계선의 차이를 헷갈리거나 남북이 함께 추진한 사업이 언제 시작됐는지 잘못 알려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A 씨는 “심지어 임진각 바로 건너편은 한국 땅인데 외국인들에게 ‘저기가 북한 땅’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투어 콘텐츠의 질이 낮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국인 여성 B 씨는 “버스에서 틀어주는 DMZ 소개 영상이 10년도 훨씬 넘은 구식처럼 보여 실망했다. IT 강국인 한국이라면 충분히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예산을 엉뚱한 데 쓰는 거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DMZ 투어를 비롯한 안보관광이 체류형 관광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찍고 가는’ 식의 한나절 또는 당일치기 코스는 일회성 관광객만 늘린다는 얘기다. 문화유적이나 자연명소와 연계해 장시간 머무르는, 지속가능한 관광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효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산업연구실장은 “접경지역 대부분이 군사지역이다 보니 군과의 협조가 긴밀하지 못한 한계가 많았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문성 있는 해설가를 적극 고용하고 콘텐츠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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