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만 지켜도 비극막아”… 몸에 밴 ‘안전무시 관행’ 뿌리 뽑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4일 03시 00분


행안부, 안전불감증 근절 나서

토요일이던 4월 28일 인천대교. 갑자기 굉음이 들리더니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가 1차로를 빠르게 지나갔다. 2차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던 기자의 차량을 순식간에 따돌렸다. 인천대교의 제한속도는 시속 100km. 하지만 교통량이 많지 않아 속도를 높이는 차량이 많다. 지난해 12월부터 양방향에서 과속 구간단속(9.3km)을 실시 중이지만 교묘하게 카메라를 비켜가며 속도를 내는 차량이 여전히 많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의 과속은 자칫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2015년 영종대교에서는 짙은 안개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버스가 앞 차량을 들이받아 100대가 넘는 추돌사고로 이어졌다. 2명이 숨지고 130명이 다쳤다. 2012∼2016년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791명에 달한다.

○ 관행이 된 ‘안전 무시’

과속도 엄연히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17조 위반이다. 하지만 많은 운전자는 단속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종종 속도를 높인다. 자동차 전용도로뿐 아니라 통행량이 적은 일반도로에서 습관적으로 가속페달을 밟는다는 운전자도 있다.

몸에 밴 안전불감증은 과속뿐이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한 ‘안전 무시’ 관행 7개를 선정했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관행이다. 과속과 불법 주정차, 비상구 폐쇄 및 물건 적치, 안전띠 미착용, 건설현장 안전규칙 미준수, 등산 시 인화물질 소지, 구명조끼 미착용이다.

수도권의 한 광역버스에서 승객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은 채 앉아 있다. 안전띠 착용은 9월 28일부터 전 좌석에서 의무화된다. 동아일보DB
수도권의 한 광역버스에서 승객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은 채 앉아 있다. 안전띠 착용은 9월 28일부터 전 좌석에서 의무화된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와 올 1월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등 최근 발생한 화재 참사는 사소한 안전 무시 관행이 화를 키웠다. 제천 화재는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다. 비상구는 가려져 있거나 아예 가로막혀 제 역할을 못했다. 두 차례의 화재 당시 인명 피해를 키운 결정적 원인이다. 불법 주정차와 부실한 비상구 관리 모두 법률을 통해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설마’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전 무시가 돌이킬 수없는 참사로 이어졌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법과 규정은 개선됐다. 어길 경우 처벌 근거도 새로 마련되고 수준도 강화됐다. 문제는 일상의 변화가 바뀐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건설현장에서 근로자 391명이 숨졌다. 이 중 68명이 안전에 필요한 복장이나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전체의 17.3%다. 4년 전인 2012년에도 전체 건설현장 사망자 중 17.9%(64명)로 비슷했다. 4년간 나아진 건 없었다. 모든 건설업 종사자는 산업안전보건법 23조에 의해 현장에서 안전복과 장비를 갖춰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줄기는커녕 늘어난 것이다.

안전띠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2016년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인원은 1527명에 달했다. 연평균 305명이다. 안전띠를 맨 탑승자가 대형 교통사고 때 목숨을 구한 건 여러 사례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그저 ‘기본’을 지킨 덕분이다.

○ 안전불감증에 ‘무관용’ 원칙

행안부는 3일 ‘안전 무시 관행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일상 속에 자리한 잘못된 관행에 강력하게 대응하려는 것이다. 우선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못 쓰게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다. 사고로 발생한 피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건물 책임자 등에게 부과한다. 산불을 낸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관련법을 적용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범국민 안전운동 확산을 위해 ‘안전보안관’ 제도를 도입한다. 전국에서 1만여 명이 활동한다. 이들은 안전신문고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각종 안전 무시 관행을 신고한다. ‘7대 안전 무시 관행, 이것만은 꼭 바꿉시다!’ 표어를 활용한 안전문화 운동도 펼쳐진다.

안전 인프라도 개선된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차량용 카시트 보급과 산불 감시용 폐쇄회로(CC)TV 확대도 추진한다. 류희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7대 관행을 시작으로 안전을 무시하는 생활 속 모든 관행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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