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다며 볼 만지작, 제발 참아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4일 03시 00분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9>아이들 예뻐하는 ‘애(kids)티켓’


■ 아이 손 덥석… 손은 씻었나요? 엄마는 속타요


두 살, 네 살 두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면 기분 좋은 시선을 받습니다. 먼저 다가와 “애들이 참 귀엽네” 하며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중년의 샐러리맨,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우리도 저런 아기 낳자”고 하는 커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불쑥 다가오는 손길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습니다. ‘늑대의 손’이 갑자기 아이의 볼살을 잡아채기라도 하면 “손은 씻었어요? 누가 당신 볼을 불쑥 만지면 좋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친정엄마에게 하소연하니 오히려 핀잔을 주더라고요. “예쁘다는데, 너도 참 별스럽다.”

하지만 엄마들의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혹여 감기라도 옮지 않을까, 표현은 못 해도 불쾌해하지 않을까…. 세상이 험해진 탓인지 주변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부모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달라진 시대, 아이를 예뻐하는 ‘애(kids)티켓’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 만 4세 아이도 자기결정권 알아요

지난해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특이한 청원이 올라왔다. 길거리에서 남의 아이를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글쓴이는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였다. 화장실 옆 칸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손도 안 씻고 아이를 불쑥 만진 게 못마땅했다. 그는 “변기 레버를 만진 손으로 아이 얼굴을 만지다니…”라며 분노했다.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비슷한 경험담을 토로한다. 주부 최모 씨(32)는 “파운데이션을 바른 아주머니가 갑자기 아이에게 얼굴을 부빌 때, 담배 피우던 행인이 애를 쓰다듬을 때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럴 때 단호하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선의를 알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정현(가명·33) 씨는 지난해 병원에서 난감한 경험을 했다. 친지의 병문안을 갔는데, 같은 병실에 입원한 할머니 네 분이 세 살배기 딸의 손과 얼굴을 연신 쓰다듬었다. 혹시 아이에게 병균이 옮을까 걱정됐지만 “아이가 예쁘다”는 노인들을 밀쳐낼 순 없었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의 아이를 만지는 건 아주 긴밀한 정서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며 “그렇더라도 맨살을 만지거나 강한 압력을 주거나 거칠게 만지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고, 피부가 민감하다. 두 아들을 키우는 김주현(가명·32) 씨는 “아이가 예쁘면 차라리 옷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동은 만 4세부터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자각하게 된다. 주부 박모 씨(34)는 “다른 사람이 예쁜 가방을 들었다고 ‘예쁘네요’라고 하면서 덥석 만지지 않는다. 아이는 말할 것도 없다”며 “어린 생명체라고 허락 없이 만져도 된다는 건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법원도 아동의 권리와 주체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2012년 한 리조트에서 어머니와 춤추던 10세 여아의 손을 잡아 끈 70대 노인은 폭행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아이의 의사에 반해 손을 잡아 끈 것은 타인의 신체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본 것이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어린 시절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다고 여긴 아동들은 이후 자존감 형성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며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아동에게도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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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작#아이들#애티켓#예절#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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