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만큼 깨끗한 분이 없습니다.”
8일 오후 3시 52분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9)이 증인석에 앉아 천천히 입을 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재판에 나온 정 전 비서관은 “이 분(박 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범행을) 하셨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에서 특활비를 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부인한 것이다.
“하…”라며 3초간 한숨을 쉬며 잠시 주위를 둘러본 정 전 비서관은 다시 재판부를 응시하고서 “팩트와 관련해선 더 드릴 말씀이 정말 없다. 저의 심경에 관련해선 말씀드릴 게 많다”고 했다. “그분(박 전 대통령)이 평생 사신 것과 너무나 다르게 비치고 있다. 그 부분이 안타깝다. 그 외에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특활비를 뇌물로 받았다고 보느냐’는 국선변호인의 질문에는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1년 6개월간의 형기를 마치고 4일 만기 출소한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출소 4일 만에 법정에 나온 그는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말 외에 공소사실과 관련한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자신이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건넨 혐의로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다. 검찰과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의 설득에도 정 전 비서관은 “동일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증언을 거부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 거부로 증인신문은 시작한 지 30분 만인 오후 3시 54분 종료됐다. 정 전 비서관은 재판부와 검찰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 법정을 떠났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그는 “(법정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앞서 정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2시 45분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줄곧 입었던 수의 대신 감색 정장을 입고 밝은 표정에 걸음도 당당했다. 건물 내부에서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는 출입구를 착각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적이 없어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과 제가 공범으로 돼 있어서 면회가 안 된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 10분 법정에 들어선 정 전 비서관은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구속돼 있을 때 피고인 신분으로 마주쳤던 검사들과는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오후 3시 24분 법정에 들어온 재판부가 “정호성 씨 나와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증인석으로 걸어가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을 ‘정호성 씨’라고 불렀다. 형기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피고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다. 검찰과 국선변호인도 그를 ‘증인’이라고 불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