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태어나자마자 척추암 판정을 받았다. 14번의 항암 치료를 견뎠지만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엄마는 좌절하지 않았고 내 힘으로 딸 앞에 놓인 혹독한 세상을 조금씩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2일 서울 강남구 이베이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부문 이사(45)는 회사 안팎에서 사회공헌 활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딸은 나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줬다”며 “그 눈을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지난달 말 자사의 오픈마켓 ‘옥션’에 발달장애인 전용 코너를 열었다. 홍 이사가 이끄는 사회공헌팀의 새 사업으로 그가 2016년 오픈마켓 최초로 만든 지체장애인 전용 쇼핑몰 ‘케어플러스’를 확대한 것이다.
옥션에서 팔고 있는 다리를 떨거나 차는 것을 방지하는 의자 밴드, 과행동 교정을 돕는 실내 트램펄린 등은 해외에서는 쉽게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홍 이사는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몰에 장애인 용품을 입점시켜 장애를 더 친숙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 이사와 이베이코리아는 장애인이 판매하는 물건을 온라인몰에 입점 시켜 자립을 돕는 활동을 2년째 해오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기 위한 진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홍 이사를 저돌적인 활동가로 만든 힘의 원천은 단연 딸 지민이다. 그가 2016년부터 만들고 있는 ‘서울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도 휠체어를 탄 딸이 세상을 마음껏 누빌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딸과 함께 복잡한 환승역에서 내렸어요. 계단만 올라가면 되는데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이 나 있었어요. 역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그 층은 우리 호선 담당이 아니니 다른 환승 호선 역무실에 전화하라’며 서로 떠넘기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났죠.”
그날 이후 홍 이사는 딸과 함께 휠체어로 서울 곳곳을 다니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장애인들의 이동이 얼마나 불편한지 동영상을 보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하나둘 모였다. 홍 이사는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뜻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시민 자원봉사자가 직접 지하철역 등에서 휠체어를 타보며 지도 정보를 수집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지금까지 총 33개역 58개 구간의 환승지도가 만들어졌고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다.
딸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겠다는 질문에 홍 이사는 “초등학교 6학년인 지민이가 요즘 사춘기여서 무뚝뚝하다”며 손을 내저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한테는 ‘우리 엄마가 이런 일을 한다’며 자랑한다고 하더라고요. 지민이는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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