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인 남성이 얼굴에 총을 맞았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코와 턱 등 얼굴 대부분이 훼손됐다. 이 남성은 뇌사자로부터 얼굴을 기증 받아 안면이식 수술을 한 후 새 삶을 살고 있다. 뇌사자의 아내는 이 남성을 보며 “죽은 남편이 살아온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영화 ‘페이스오프’처럼 2005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안면이식이 시행된 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40여 명이 이 수술을 받았다. 일부 선진국에서만 가능한 안면이식 수술이 이르면 내년부터 국내에서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의료계의 안면이식 연구가 본격화되자 정부도 법 개정에 나섰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의료진은 3월 해부용 시신에서 얼굴을 떼어내 또 다른 시신으로 옮기는 안면이식 1차 시뮬레이션을 시행했다. 이어 올 9월에는 성형외과뿐 아니라 마취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 각 분야 전문의가 모여 2차 시뮬레이션을 시행할 계획이다. 안면이식 수술 정보를 공유하는 ‘안면이식 심포지엄’도 11일 열린다. 세브란스병원 홍종원 성형외과 교수는 “국내 의료진의 수술 실력이 뛰어나 허용만 되면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안면이식은 환자와 기증자(뇌사자)의 ‘매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령과 혈액형, 피부색, 얼굴 구조 등이 유사해야 성공확률이 높다. 수술 전 ‘3차원(3D)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가상으로 안면이식 수술 순서를 세밀하게 짜야 한다. 이후 기증자의 이마부터 턱까지 절개해 얼굴 표면 밑 혈관과 신경, 근육 등을 함께 분리한다. 동시에 안면을 이식받을 환자 얼굴 부위의 혈관과 신경, 근육 등도 엉키지 않도록 정리해야 한다. 이후 혈관, 신경, 근육 순으로 연결한다. 수술 후에는 면역억제제를 투입해 거부반응을 예방해야 한다.
국내 안면이식 대상 환자는 총상 환자가 주를 이루는 미국과 달리 주로 교통사고나 얼굴에 혹이 생기는 ‘신경섬유종’ 환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암으로 얼굴이 손상된 경우는 이식수술을 하기 힘들다. 안면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면 오히려 암세포가 활성화될 수 있어서다.
정부는 안면이식 수술이 가능하도록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장기이식법상 간과 신장, 골수, 췌장 등 13개 장기와 조직을 이식할 수 있다. 지난해 팔 이식과 살아있는 폐 이식이 국내에서 성공했지만 팔과 생체 폐는 장기이식법상 허용되지 않아 불법 논란이 일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장기이식법을 개정해 이식 가능한 장기나 신체를 사실상 제약 없이 확대할 방침이다. 법으로 이식 가능한 장기를 적시하지 않고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전을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복지부 박미라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최근 두 차례 국회를 찾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에게 장기이식법 개정안 발의의 필요성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다만 윤리적 논란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2005년 프랑스에서 처음 안면이식 수술을 시도했을 당시 반대 목소리가 컸다. 다른 장기와 달리 얼굴은 인간의 정체성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안면이식은 의학적 접근뿐 아니라 얼굴이 갖는 대표성으로 철학적 윤리적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며 “치열한 논의과정을 거쳐 꼭 필요한 환자가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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