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10일 오후 1시 서울 성동구 사근동 노인복지센터 2층 강의실에 가요 ‘붉은 노을’이 울려 퍼졌다. 가수 이문세가 부른 원곡보다 조금 더 경쾌한 ‘빅뱅 버전’이었다. 약 20㎡의 강의실에는 화려한 무지갯빛 조명이 반짝였다. 잠시 후 리듬을 타던 DJ가 음악을 바꿨다. 이번엔 빅뱅 멤버 대성의 ‘날 봐 귀순’이 흘러나왔다.
“자, 9988청춘클럽 시작합니다”
DJ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50여 명이 강의실 가운데를 채웠다. 형형색색 조명 아래 남녀가 흥겹게 몸을 흔들었다. 일부는 속사포처럼 빠른 랩 가사를 크게 따라했다. 이날 강의실을 찾은 ‘클러버’의 나이는 평균 70세. 은색 스카프와 노란색 모자로 한껏 멋을 낸 조순분 씨(73·여)는 “한 20분 몸을 흔들고 나면 1시간 운동한 기분이다”며 활짝 웃었다.
쿠바에는 ‘120세 클럽’이 있다. 100세 이상 노인들이 춤과 음악을 즐기려 만든 클럽이다. 한국의 9988청춘클럽도 비슷하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대상이다.
9988청춘클럽은 지난해 11월 서울 성동구에 문을 열었다. 성동구에 사는 65세 이상 주민은 4만1000명이 조금 넘는다. 이들을 위한 경로당이 159개 있다. 하지만 실제 이용률은 10% 안팎이다. 나이(65세 이상)로 보면 법적 노인이지만 몸과 마음은 4050대 중년이라는 생각 때문에 경로당을 기피하는 것이다.
강명복 씨(70·여)도 집 근처 경로당 서너 곳을 다니다가 지금은 9988청춘클럽을 찾는다. 경로당에서는 온종일 모여 앉아 화투를 치거나 TV을 보는 게 전부였다. 구청에서 하는 스포츠댄스 강의에도 참여했지만 전문 강사의 진도를 따라가는 게 벅찼다. 강 씨는 “경로당을 가면 하는 일이 없어 영락없이 노인이 된 것 같았다. 고집 센 노인들끼리 싸움도 잦았다. 하지만 청춘클럽에 오면 유쾌하게 친구를 사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예산 2000만 원으로 노인복지센터 2층 강의실을 클럽처럼 꾸몄다. 실제 클럽에서 쓰는 조명과 음향시설을 설치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2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나름 드레스 코드(의상 규칙)도 있다. 센터에서 복고풍 청자켓과 청바지를 대여해주는가 하면 ‘오페라의 유령’에 나올법한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가면무도회도 열린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지난해 11월 문을 열어 지금까지 3500명이 이용했다. 어르신들은 “콜라텍 말고 건전한 노인복지시설에 이런 곳이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클럽은 어르신들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1개월 이상 이곳을 다닌 어르신 100명을 대상으로 클럽 이용 후 건강상태를 물은 그 결과 고혈압과 관절염 우울증 등 평소 지병이 좋아졌거나 아주 좋아졌다는 답변이 69%였다. ‘건강해져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었다’는 답변도 41% 나왔다. 신명나게 추는 막춤이 노인들을 건강하게 만든 것이다.
이도선 노인복지센터장은 “노래를 듣고 춤을 추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노인도 마찬가지다. 복지시설이나 경로당도 이제 즐길 문화가 있는 곳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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