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회의의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과정을 지켜보는 서울 A대 입학처장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립대-사립대, 상위권대-하위권대, 수도권대-지방대, 일반대-전문대 등 대학들은 각각 우수학생을 뽑기 위해 대입전형을 차별화하고 있다”며 “각 대학의 대입전형은 오랜 기간 대학 특성에 맞춰 최적화된 것인데 공론화를 통해 하나의 모형으로 만들면 혼란이 크다”고 우려했다.
○ 획일화된 대입전형 강요하는 공론화
현재 고등교육법은 대학이 학생 선발방법 및 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동안 교육부는 입학정원과 예산을 무기로 대입전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으나 그 과정에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도 의견을 조율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비전문가인 시민참여단에 전권을 위임했다. 이들의 결정에 대학들의 학생 선발권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동아일보는 18∼21일 서울 소재 대학 5곳과 수도권 및 지방 소재 대학 각각 1곳, 전문대 1곳 등 8개 대학 입학처장의 솔직한 의견을 익명을 전제로 들어봤다.
입학처장들은 공통적으로 획일화된 대입전형이 강제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현재로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율 △수시 정시 통합 △수능 절대·상대평가를 조합한 단일한 최종 모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서울 상위권 대학은 학종 비율이 높아 정시 비율 확대를 요구받고 있지만 나머지 대학들의 사정은 다르다. 지방대는 학생부교과전형(내신) 위주로 선발하고, 전문대는 수능을 보지 않는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 A대 입학처장은 “획일적인 대입전형을 정해 주고 ‘따르라’고 하면 오히려 대학별 경쟁력은 사라지고 전국 대학이 서열화된다”고 했다. 영남권 B대 입학처장은 “전 국민을 아우르는 입시제도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상위권 대학은 상위권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각각 자기 대학에 맞는 대입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C전문대 입학처장은 “이번 대입제도 개편에서 학종과 수능 비율만 쟁점이 되고 있는데 전문대 신입생의 80∼90%는 아예 수능을 응시하지 않는다”며 “일부 상위권 학생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나머지 학생들은 희생을 감수하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 줘야”
서울 D대 입학처장은 “대입은 하나를 바꾸면 나머지 다른 부분이 영향을 받는 생태계”라며 “촉박한 일정에 무리한 결정을 내려 자칫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면 정말 큰일 난다”고 우려했다. 대입은 초중고교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사교육 시장 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조금만 바뀌어도 파급력이 매우 크다.
서울 E대 입학처장은 “어떤 가이드라인이 나오든 대학은 적응한다. 문제는 단기간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사교육 시장만 커져 그 피해를 학생들이 본다는 것”이라며 “변화가 가장 적은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공론화 방식으로 대입제도를 결정하는 데 대해선 모두 부정적이었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대입은 신고리 원전 재가동과 성격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수도권 F대 입학처장은 “원전은 정답이 있는 과학인 반면 교육은 정답이 없는 철학의 문제”라며 “주관적 가치가 많이 개입되는 공론화로 조율이 가능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G대 입학처장은 “대학은 우수학생을 뽑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대학으로선 자율성을 부여하면 가장 좋다”며 “그것이 어렵다면 큰 틀에서 몇 개의 가이드라인을 주되 세부적인 전형은 대학이 각자 특성에 맞춰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H대 입학처장은 “절차가 아니라 결론이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대학들이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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