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도 소박하게… 재계 큰 별, 자연 속에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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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회장 22일 영결식

“하늘나라서 편히 쉬소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20일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의 발인이 진행됐다. 구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영정을 장의차량에 모시고 있다. 이날 발인에는 고인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 고인의 동생들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을 포함한 유족 및
 지인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켰다. 사진공동취재단
“하늘나라서 편히 쉬소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20일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의 발인이 진행됐다. 구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영정을 장의차량에 모시고 있다. 이날 발인에는 고인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 고인의 동생들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을 포함한 유족 및 지인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켰다. 사진공동취재단
‘재계의 큰 별’ 구본무 LG 회장이 영면했다. 20일 타계한 구 회장의 발인이 22일 오전 8시 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구 회장의 외아들(양자)인 구광모 LG전자 ID(Information Display) 사업부장(40·상무)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등 유족과 지인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발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을 잠시 들렀다가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이후 화장한 뒤 수목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장지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 인근이다. 고인이 생전에 애정을 쏟았던 곤지암 소재 생태수목원인 ‘화담숲’은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어 가족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따로 조성해 둔 다른 공간에 고인의 유해가 모셔졌다.

국내 대기업 총수의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목장은 화장한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는 자연 친화적 장례 방식이다. 평소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고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바꾸는 데 힘썼던 고인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화장과 수목장에 대한 의사를 자주 드러냈다. “매장 문화가 지속되다가는 한국의 모든 산이 다 묘지로 뒤덮인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전 LG 고위 관계자는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화장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며 “숲과 새, 물고기 등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특히 수목장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다. 자연을 사랑하신 만큼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신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발인에서는 구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영정을 들었다. 구 회장을 수행했던 6명의 전 비서진 등 LG 임직원들이 관을 운구했다. 관 뒤로는 구 상무가 두 손을 모은 채 비통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구 상무 뒤로 구 회장의 동생들인 구본능 회장, 구본준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구자열 LS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 등 유족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켰다.

친지와 지인들은 눈물로 구 회장을 보냈다. “마지막 회장님 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보시고 예의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에 모두 5초간 운구차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이고 목례했다. 맏사위인 윤 대표, 아들 구 상무 등이 운구차에 올라 장지인 곤지암까지 고인을 모셨다. 떠나는 장의차를 향해 구본능 회장은 눈시울을 붉힌 채 다시 한번 고개를 깊게 숙이며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작게 말했다.

구 회장의 친지 및 가까웠던 지인 100여 명이 뒤를 따랐다. 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등 LG 계열사 부회장단 6명이 참석했다. ‘나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진행했지만 고인을 잊지 못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발인까지 함께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는 물론이고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정계 인사도 모습을 나타냈다. 고인과 매년 여행을 다닐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허영만 화백도 구 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장의차가 장례식장 입구를 빠져나간 지 10여 분이 흐르도록 친지와 지인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 회장은 중간 값의 술을 즐겨 드셨다. 너무 싼 술을 마시면 위선 같고, 너무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라면서 그의 소탈함을 회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는 페이스북에 “2009년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뒤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을 때 구 회장께서 약밤나무 묘목을 보냈다”며 “북한에서 어렵게 구한 묘목을 당신 농장에서 키우셨다고 한다”고 기억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구 회장에게 “자그마한 밤이 참 맛있다”며 북측 약밤을 먹어볼 것을 권했던 일화를 기억해 묘목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구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재계 총수로는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서울 강서구가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22일 구 회장이 추진해 지난달 완공한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언급하며 “61만 여 강서구민과 함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황량하고 척박한 ‘마곡’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부럽지 않을 융복합연구단지로 우뚝 섰다. 위기 때마다 회장님의 뚝심과 신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LG사이언스파크는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홍정수 기자
#재계 큰 별#구본무 lg회장#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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