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5만원 실손보험료 내고도… “1만~2만원 청구 복잡해” 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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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까다로운 실손의료보험 청구

회사원 정모 씨(35)는 4년 전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두 달 동안 통원 치료를 받았다. 응급실 비용을 포함해 진료비로만 20만 원 이상을 썼다.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정 씨는 보험금 청구를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청구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넘겨버렸다. 바쁜 직장 생활 탓에 진단서와 진료비 영수증 같은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보내는 것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정 씨는 “매달 5만 원가량의 실손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보험금을 청구해 본 적이 없다”며 “1만 원 안팎의 소액 보험금은 아예 청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씨처럼 실손보험에 가입해 놓고도 통원 치료 보험금을 제대로 청구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가입자의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단체 ‘소비자와 함께’와 손해보험협회가 성인 4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다. 최근 보험사들이 청구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번거롭게 여기는 가입자가 여전히 많다.

○ “제2 건강보험인데도 청구 절차 번거로워”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개인 실손보험 계약 건수는 3419만 건으로 국민의 약 66%가 가입했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이유다. 40세 남성을 기준으로 월평균 기본 보험료 1만9429원, 가구당 6만3000원을 내고 있다.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는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가입자의 혜택을 늘리기 위해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KB손해보험은 이달 들어 서울 신촌·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받은 가입자가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교보생명은 자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보험금 자동지급 서비스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또 많은 보험사들이 고객이 관련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PC나 스마트폰 앱으로 올리면 보험금 청구가 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청구 간편화 시스템도 일부 대형병원에만 적용되는 실정이다. 환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동네 병원에선 여전히 가입자가 수수료를 내고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 한 대형 손해보험사에 따르면 실제 실손보험금 청구 건수의 65%가 종합병원이 아닌 일반 의원이나 보건소에서 이뤄졌다.

또 중장년층이나 고령층 가입자는 여전히 모바일 앱 등을 통한 보험금 청구 절차를 까다롭게 여기고 있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PC나 스마트폰 앱으로 보험금을 청구했다는 응답은 28.9%에 그쳤다. 응답자 70% 이상이 여전히 보험설계사를 찾거나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일일이 발급받아 우편이나 팩스로 보냈다.

○ 자동 청구 놓고 금융-의료계 대립

이 때문에 실손보험도 건강보험처럼 가입자가 별도의 청구 절차 없이 자동으로 보험금을 받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는 건강보험처럼 실손보험도 병원이 직접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 반발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의료계는 “보험금 지급 심사에 필요한 정보 외에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가 보험사에 무분별하게 넘어갈 경우 보험금 지급이나 갱신 거절의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연준흠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개인의 의료기록을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게 맞는지 국민 의견을 먼저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실손보험금 청구가 자동화되면 가입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서류 발급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수수료 비용을 줄이고 소액 보험금을 포기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병원마다 제각각인 비급여 진료의 코드를 표준화해 일부 병원의 과잉진료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금융전략실장은 “비급여 진료의 코드가 표준화되면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며 “미국, 유럽 등에선 민영 보험도 의료기관이 보험금을 직접 청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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