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태아와 낙태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를 사람으로 보아야 할까요? 사람으로 본다는 것은 태아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에서는 태아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릅니다. 민법에서는 태아를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인과 달리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형법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분만을 위한 산모의 진통이 시작된 후 고의로 태아를 죽게 하면 영아살해죄가 됩니다. 분만 개시 이전에 죽게 하면 낙태죄가 성립합니다. 현행법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269조 1항),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형법 270조 1항).

원치 않은 임신까지 낙태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는 임신부의 건강을 심각히 해치거나 성폭행 등에 의한 임신 등 다섯 가지 사유가 있을 경우 임신 24주 이하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 정부가 파악한 낙태는 한 해 16만8000여 건인 데 비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연간 109만5000건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합법적인 낙태는 6%에 불과하고 기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사실상 현실과 법률이 겉돌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24일 많은 사람의 시선이 헌법재판소에 집중됐습니다. 1953년에 제정되어 60년이 넘게 존속되어 온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공개 변론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 찬성과 반대가 4 대 4로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을 내린 뒤로 6년 만에 다시 열린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심리입니다.

논란의 핵심 쟁점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행복추구권 및 자기결정권’입니다. 전자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후자에 실리는 무게가 달라집니다. 종교단체, 시민단체, 누리꾼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 있습니다. 정부의 입장도 두 갈래로 갈렸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의 권리를 보다 중요한 가치로 보아 위헌 입장이고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권을 중시하여 합헌 입장입니다. 이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해결이 어렵습니다.

지난해 11월 낙태죄 폐지 국민 청원이 23만 명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습니다.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의존적 존재인 태아의 권리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행복추구권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태아를 보호해야 할 생명권의 주체로 보는 존치론자들은 낙태죄를 폐지하면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낙태가 더욱 늘 것을 우려합니다.

이번 기회에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행복추구권이 함께 보호될 수 있는 절묘한 입법 방안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인구의 78%가 가톨릭 신자이며 유럽에서 가장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해 온 아일랜드는 25일 국민투표를 통해 35년 만에 낙태를 허용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을 만들지 않는 남녀 모두의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태아#낙태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