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9>1억 준다면 아이를 더 낳을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16시 04분



“1억을 준다면 아이 더 낳을까요?”

얼마 전 만난 한 정부 인사가 내게 물었다. 실없는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다. 각종 출산장려정책으로 잠깐 반등하는가 싶던 출산율은 최근 2년간 갑자기 작정이라도 한 듯 곤두박질치고 있다. 40만 명 선이 처음 깨질 거라던 지난해 출생아수는 38~39만 명 정도가 아니라 35만 명까지 급감했다. 올해는 그 파죽지세를 이어 30만 명 선마저 붕괴할 거란 예상마저 나온다.

올해 안에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수) 1.0 미만이라는 전 세계 통틀어 전대미문의 수치에 도달할 거란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뭐든 절실하지 않을까. 그는 “정말 1억 원을 줘서 아이를 더 낳는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답답함과 절박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총 비용이 3억 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1억 원은 분명 적지 않은 돈이다. 나만 해도 당장 1억 원이 생긴다면 덜 수 있는 걱정거리가 많다. 나날이 늘어갈 아이들 식비, 교육비, 옷값 등에 대한 부담 등.

하지만 육아는 단순히 비용으로 환산할 일은 아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녀가 된 인생 선후배들을 만나면 하나 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단 하루라도 아이와 가족 없이 나만을 위해 지내봤으면.” 아이는 부모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육아는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부모의 시간과 노동력을 요구한다.

나도 다자녀 엄마치고는 젊은 축에 속하지만 동갑내기인 남편은 다른 아빠들과 비교할 때 정말 젊다. 친구들 중에는 미혼도 많아 사교모임이 잦은데, 아이들이나 가족 일정 때문에 언감생심, 못 가기 일쑤다. 종종 남편은 “애들 없이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해봤으면” “어디 둘만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게 ‘속 편한 소리’라고 빈축을 사지만 그 마음 왜 모르겠나. 나도 내 시간 하나 없이 직장일+가사로 빠듯한 하루를 보내는 게 물리고 힘든데. 30대 중반, 총각 친구들에 둘러싸인 남편은 상대적으로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저렴한 육아’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주말 나들이만 나가도 시설이용비용, 식비, 기름값 등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이 든다. 부모가 쓰는 시간, 노동력, 이로 인한 재충전 비용 등을 감안하면 ‘육아의 값’은 더욱 커진다.
‘저렴한 육아’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주말 나들이만 나가도 시설이용비용, 식비, 기름값 등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이 든다. 부모가 쓰는 시간, 노동력, 이로 인한 재충전 비용 등을 감안하면 ‘육아의 값’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언제였던가, 내게도 며칠간 일이 몰리고 애들은 애들대로 아파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던 한 주가 있었다. 결국 일에서 실수가 터졌다. 집에 가서 모자란 작업을 마무리하고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지만 일단 귀가하면 애들 보느라 마음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정말 악착같이 하고 있는데.’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회사 선배에게 사정을 털어놨다. “사정은 알지만….” 선배도 안타까운지 말끝을 흐리셨으나 실수는 실수였다. 내 개인 사정이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나만 워킹맘인 것도 아니고 요샌 워킹대디들도 일·가사 양립에 바쁜 경우가 많다. 이 두 개의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해 운용하느냐는 결국 본인에게 달렸다. 그럼에도 절대적 시간 자체의 부족, 그에 따른 능력의 반감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은 때론 가혹하다. 나도 여유 있게 사태를 관망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고, 공부할 여력이 있다면 좀 더 양질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안 해 본 워킹맘(혹은 워킹대디)들은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과연 1억 원이 우리 부부에게 이런 시간과 여유를 보장할 수 있을까? 돌봄 비용을 대폭 늘려 육아를 누군가에게 좀 더 전가한다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단순히 계산해 봐도 엄청난 비용이다. 나 같은 다자녀가정이 종일 베이비시터를 쓴다면 못 해도 한 달에 300만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갈 것이다. 1억 원이라 해도 3년 정도 지나면 사라지고 말 수준이다.

자녀수가 적더라도 육아 여건이 열악한 집이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다자녀란 이유로 “집이 좀 사시나 봐요”라는 농담을 자주 듣는데, 상대적으로 ‘다자녀 키울 만큼 사는 집’인 것은 사실이다. 경제력이 월등하다는 게 아니라 적당한 돈, 안정적인 주거환경, 건강하신 양가 부모님, 정부 아이돌보미 이용 등 여러 복합적인 조건이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변변찮은 외벌이거나 빚이 있거나 기약 없는 전세살이거나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쌍돌봄비용’이 나가는 식이다.

이런 이들은 자녀를 갖는 게(혹은 더 갖는 게) 다자녀가정인 나만큼이나 부담스러울 수 있다. 회사 선후배들끼리 모여 자녀 얘기를 하다 보면 이런 말을 흔히 듣는다. “아이 갖는 게(혹은 더 갖는 게) 엄두가 안 난다.”

이런 상황에서 1억원을 준다고 아이를 낳을까? 기회비용을 따져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데? 물론 돈에 혹해 아이를 낳거나 돈을 목적으로 아이를 갖는 출산도 있을 것이다. 그게 정부가 추구한 바는 아니겠지만.

나는 정부 인사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라면 1억 준다고 더 낳지 않을 거라고. 그 돈으로 차라리 다른 일을 하시라고. 우린 그렇게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농담 같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상념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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