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반성은커녕… “집유 축하” 격려 나누는 범죄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1일 03시 00분


인명사고 가해자 온라인 카페 눈살

‘재판 다니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 많으셨죠. 집행유예 축하합니다.’

음주 운전하다 사고를 낸 가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 게시물에 얼마 전 달린 댓글이다. 3월 한 회원이 ‘두 번의 음주 운전 사고로 면허 취소됐고, 이번에 무면허로 음주 사고를 냈다. 4명이 다쳤는데 집행유예가 나왔다’는 글을 올리자 달린 ‘축하’ 댓글이다. 그 아래로 ‘고생했다’ ‘힘내라’ 같은 댓글이 10개 넘게 달렸다. ‘집행유예도 너무 세게 받은 것 아니냐’는 댓글도 있었다.

‘행정심판’이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회원이 약 4만4000명이다. 이른바 ‘생계형 음주운전자 구제를 위한 행정심판제도 관련 정보 공유’ 목적으로 2005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10일 동아일보 취재진이 최근 2년간 게시물을 살펴본 결과 음주 운전 가해자들이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공간으로 변질돼 있었다.

카페 게시물에는 가해자들이 사고 내용을 소개하며 대처 요령을 묻는 글이 가장 많았다. 다른 회원이 ‘음주 3진 아웃으로 면허 취소됐는데 또 음주 사고를 내 3명이 다쳤습니다. 도움 좀 주세요’라고 올리면 ‘그 지역 법원 판사가 얼마 전 부임했는데 형량이 빡빡하답니다. 평소 했던 봉사활동 잘 어필하세요’라는 식의 답변이 달린다.

게시물에는 음주 운전 사고로 처벌받은 횟수를 뜻하는 ‘3진’ ‘4진’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회원 가운데 음주 운전 사고 재범자가 상당수라는 얘기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음주 운전 사고 가해자 가운데 재범자 비율은 2013년 42.4%에서 지난해 44.4%로 꾸준히 40%대다.

카페 회원들은 낮은 형량을 선고받은 가해자를 축하하기도 한다. 어떤 회원이 ‘음주 4진입니다. 고통의 3개월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집행유예 성공입니다’라고 올리자 ‘저도 4진인데 실형까지 안 가겠네요’ ‘부럽다’는 댓글이 달렸다. ‘집행유예 2년 받았다’는 음주 뺑소니 가해자에겐 ‘고생하셨어요. 추카추카’ 같은 글이 쏟아졌다. 무면허 운전자가 ‘5번째 음주 사고를 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쳤는데 벌금 500만 원 때리네요’라고 올리자 ‘이건 진짜 기적. 로또 맞았네요’ 같은 댓글이 줄을 이었다.

되레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가해자는 ‘피해자가 전치 6주 나왔는데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 단단히 한몫 챙기려는 것 같다’고 올렸다. 또 다른 가해자가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 농도 0.16입니다. 피해자 전치 3주 나왔는데 합의금 600만 원 달라네요’라고 올리자 ‘3주에 600(만원)이면 사기다. 합의 보지 말고 그냥 벌금 내라’며 옹호하는 댓글이 달렸다. ‘요즘은 살짝 부딪혀도 음주면 바로 드러눕는다’며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모는 댓글도 보였다.

음주 운전 가해자들이 보이는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처벌이 관대하다 보니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가볍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 음주 운전 사망사고 가해자가 받은 평균 형량은 1년 4개월에 불과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과 형법에서 규정한 처벌이 사실상 징역 5년 이하여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음주 운전 사고는 실형보다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 책임 회피 전략을 함께 모색한다”며 “음주 사고 재범률이 마약 범죄보다 높은 것도 ‘이번만 잘 피하면 그만’이라는 인식 탓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음주운전 반성#집유 축하#격려 나누는 범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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