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회] 비행기 연착되면 근로시간?…근로시간 단축, 여전히 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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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비행기가 연착되면 그건 근로시간인가요?”

“업종별 가이드라인은 언제 나와요?”

주요 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은 법 시행 20여일 앞두고 11일에야 발표된 가이드라인에 대해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내용은 이미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고민하고 검토한 사례이고, 기대했던 업종별 특수 상황 반영은 안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쟁점은 기업별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놓아 추후 노사갈등의 불씨만 남겼다는 우려가 높았다.

●접대의 근로 여부, 여전히 혼란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라는 게 핵심이에요. 즉 ‘알하서 잘 하시오’라는 거죠.”

이날 가이드라이를 접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숨을 쉬었다. 관리자가 지휘감독을 해야만 근로시간을 인정 한다는데 해석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주장이다.

쟁점으로 떠오른 ‘업무상 접대’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높았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가이드북 사례가 휴일에 골프 라운딩 접대하는 경우만 나와 있는데 그 이후의 식사 문제나 임원 운전기사 등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상사의 지시 또는 승인 없는 접대는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로 보인다. 개인적인 접대 약속이 많은 영업직군의 불만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상사의 구두나 뚜렷한 지시는 없었지만 법인카드로 접대 식사를 결재하면 사실상 ‘최소한의 승인’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식품기업 관계자는 “직원 중 하나가 강하게 문제제기하면 법으로 다툴 가능성이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출장시간 계산도 논란이다. 해외출장은 비행시간이나 출입국 수속시간, 이동 시간 등 필요한 시간을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통해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가이드라인 속 제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경우, 비행기를 경유해서 가는 경우 등 일일이 기업들이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더욱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지방에 위치한 A 공공기관 관계자는 “서울 출장과 접대, 회식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경우 근로시간을 어떻게 따질 것인지 의문”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근무에 해당하는지 늘 고민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혼란이 커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B 공공기관 고위 관계자는 “민간 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이 가이드라인을 무조건 지켜야 감사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정작 필요한 건 없다

기업들의 가장 큰 불만은 정작 꾸준히 요구해왔던 문제에 대한 답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탄력적 시간 근로제 개선 방안이다. 재계는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단위시간을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는 3개월까지만 가능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2022년이면 앞으로 만 4년 뒤인데 이번 정권에선 관련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말했다.

업종별 특수상황 발생시 대응 방안도 나와 있지 않았다. 직원 800여 명 규모의 석유화학기업 A 사는 주기적으로 시설의 가동을 멈추고 시설해체, 장비점검, 청소, 설계변경 등의 작업을 한다. 대규모 화재나 폭발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필수작업인데 작업이 시작되면 24시간 멈출 수가 없다. A기업 관계자는 “안전 문제라는 특수적인 상황은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게임 업계도 24시간 서비스해야한다. 방송이나 영화제작 중 대기시간을 어떻게 근로시간으로 계산할 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혼란 속에 아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300인 이상 기업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건설업계가 대표적이다. A 건설사 관계자는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위해 한 달 넘게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사무직은 그런대로 적용이 가능한데 문제는 건설현장”이라면서 “당장 계약된 공기(공사기간)가 있는데 근무시간이 줄어들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업은 특히 지방에 현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출장에 소요되는 시간이 긴 편인데 단순 인력 충원으로는 근무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공사기간과 기술력 등으로 우위를 선점했던 해외 건설현장은 상황이 보다 심각하다. B 건설사 관계자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 증가로 해외 현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면서 “안 그래도 중동지역 리스크가 커지면서 수주가 줄고 있는데 근무시간 단축이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김현수 기자kimhs@donga.com
강승현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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