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6시 반 전남 진도군의 한 아파트단지 앞. 경사가 가파른 도로에 주차된 검은색 쏘렌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에서 점점 속도가 붙은 쏘렌토는 왕복 2차로를 향해 빠르게 굴러 내려갔다.
이를 본 누군가가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마침 퇴근하던 진도군 공무원 황창연 씨(50·7급)가 비명을 들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직감한 황 씨는 차량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가까스로 차량을 따라잡은 황 씨가 운전석을 열자 차량 안에는 아이 3, 4명이 타고 있었다. 그는 한쪽 발을 땅에 대고 버티며 차량의 속도를 줄였다. 동시에 몸을 반쯤 안으로 집어넣어 중립(N)에 있던 기어를 주차(P)로 바꿨다. 차량은 10m가량을 더 굴러간 끝에 멈췄다. 아이들은 모두 무사했다. 만약 황 씨가 차량을 세우지 않았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 과정에서 황 씨는 차량 문에 부딪혀 척추뼈 3개가 골절되고 갈비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인 황 씨는 12일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사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진도경찰서는 경사로에 차량을 세우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운전자 A 씨(46·여)를 조사 중이다. 남편과 함께 체육학원을 운영하는 A 씨는 통학차량을 타지 못한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던 중이었다. A 씨는 경찰에서 “어린이 한 명을 아파트에 데려다 주면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주차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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