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혼부부 2세 계획, 관심 꺼두셔도 좋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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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17>난임부부에 아이 얘기는 그만



■ 거듭되는 ‘실패’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요

“지금 낳아도 노산(老産)이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낳아.”

회식 자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부장님의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신혼을 더 즐기고 싶다는 핑계를 댄 지 어느덧 4년. 저는 올해 서른여덟, 남편은 마흔이에요. 학위 따고 일자리까지 구하느라 졸업도, 결혼도 늦은 우리는 난임(難妊) 부부입니다.

둘 다 나이가 있어 결혼 첫해부터 임신을 원했지만 잘 안 됐어요. 인공수정을 세 번 실패하고 다음 달 시험관 배아이식을 앞두고 있어요. 양가 부모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제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몰라요. 동정이든 위로든 어떤 것도 받고 싶지 않아 비밀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 눈에는 제가 일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이기적 여자’로 보이나 봐요. “지금은 신혼이니까 좋지. 나중엔 애 때문에 살아” “승진의 기쁨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큰 걸 모르네”라며 늘 저를 설득하려 하죠. 다들 제가 난임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겠지만, 죽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울컥 눈물이 납니다. 각자 사정이 있는 2세 문제, 이젠 묻지 않는 게 예의 아닐까요.
 

■ 가족관계 서먹, 대인기피증도 생겨… 세심한 배려 필요

10년간 수백 쌍의 난임 부부를 봐온 산부인과 전문의입니다. 갈수록 만혼(晩婚)이 대세가 되면서 한 해가 다르게 저를 찾는 부부가 늘고 있죠. 재작년 난임 환자가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더군요. 아이를 원치 않는 ‘노 키즈(no kids)’ 부부가 적지 않은 시대지만 저를 찾는 부부들은 그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원합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신체적 고통이 따르는 시술을 마다하지 않고, 직장까지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난임 부부들은 거듭되는 실패만으로 충분히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주변의 ‘지나친 관심’입니다. 결혼만 했다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2세 계획’을 묻거든요. 한국 사회는 결혼과 출산을 성인이 꼭 거쳐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기는 듯합니다.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만나려 노력하는 난임 부부에게 주변인들의 섣부른 관심은 스트레스, 아니 ‘폭력’입니다.

3년째 저희 병원을 찾는 은주(가명·39) 씨는 자신이 ‘아이를 낳기 위한 짐승’이 된 것만 같다고 호소합니다. 난자가 많이 나오도록 은주 씨는 매일 집에서 배에 직접 주사를 놓습니다. 호르몬으로 기분 변화가 심해지는 건 기본입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구토가 나오는 임신 초기 증상을 겪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드디어 임신한 거냐”고 묻습니다. 이중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맞고 나면 엉덩이가 돌처럼 단단해져 일명 ‘돌주사’로 불리는 착상 주사도 맞아야 합니다. 시험관 시술을 한 날은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찬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배와 엉덩이가 온통 주삿바늘 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는 은주 씨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이럴 때 “마음 편히 가져라”는 조언을 하거나 ‘임신에 최고’라며 민간요법이나 한의원 이름을 알려주는 건 위로가 안 됩니다. 난임 부부들은 이미 안 해 본 게 없거든요. 은주 씨는 “피해의식인 건 알지만 때론 주변 사람의 위로가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며 “누구는 마음만 편하게 먹어도 생기는 아이가 난 죽도록 노력해도 생기지 않는지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했습니다.

실패가 반복되고 난임 상태가 길어지면 우울증이 오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난임 여성이 고립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을 넘어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책망, 배우자에 대한 원망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부부관계가 멀어지거나 가족 간 갈등을 겪기도 하죠.

박혜원 씨(가명·40·여)는 다섯 살 어린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첫해부터 임신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죠. 치료를 받은 지 어느덧 햇수로 5년이 돼 갑니다. 어느 날은 박혜원 씨가 퉁퉁 부은 눈으로 병원을 찾아와 오열하더군요. 시어머니가 시이모와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나이 든 며느리가 젊은 내 자식을 데려가서 대(代)가 끊기게 생겼다’고 했답니다. 박혜원 씨는 화가 나기보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져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대요. 그 후로 남편 얼굴을 보기 힘들어 2주 넘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대요. 시댁에 가면 변두리에만 있는 듯한 자신이 싫어진다네요.

난임으로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성훈(가명·36) 씨는 지난해 만난 환자입니다. ‘무정자증’으로 난임 판정을 받았죠. 얼마 전 상담센터를 찾은 성훈 씨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끊었다고 했습니다. 성훈 씨 친구들은 대부분 아빠가 됐다고 합니다.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아이 사진만 봐도 성훈 씨는 질투와 좌절감, 죄책감이 밀려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자연스럽게 부부 동반 모임을 피하게 되더랍니다. 예전엔 부동산이나 재테크가 주요 화제였던 친구 부부들과의 단톡방에서 이제는 ‘아이 키우기 힘들다’ ‘그래도 아이가 주는 행복이 최고다’라는 대화가 경쟁적으로 오간답니다. 그런 글을 보는 아내가 자신을 떠날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주변인들의 세심한 배려가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어찌 보면 아이를 갖는 것은 가정을 이룬 부부가 선택할 일일 뿐 다른 가족이나 직장동료, 친구들이 묻거나 따질 일은 아니죠. 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난임이 소수의 문제가 아닌 만큼 ‘착한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난임 부부들도 자신의 상태를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세요. 난임은 흔한 일이고, 치료와 관리의 대상일 뿐 누구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차라리 “우리도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가지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라고 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수연 기자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 등의 얘기를 바탕으로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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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혼부부 2세 계획#난임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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