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종의 지도를 60면에 나눠 수록… 제주의 오름-사찰 등 확인 가능
현존하는 고지도 중 가장 정교… 국립중앙박물관서 8월부터 전시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조선시대 고지도 동여비고(보물 제1596호).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 고지도 특별전에 전시될 예정인 가운데 동여비고에 실린 내용과 제작 배경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8일 오후 제주 제주시 건입동 국립제주박물관 전시실. 세월이 흐르면서 숱한 손때가 묻은 지도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 과거 조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두꺼운 판에 한지를 여러 장 덧댄 후 그 위에 지명과 산 이름, 도성과의 거리, 사찰, 나루터 등을 표시했다. 지명에 연한 갈색, 산과 산맥에 연한 청색, 사찰지붕을 파란색으로 채색한 그림을 넣었다. 현존하는 고지도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분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동여비고(東輿備攷·보물 제1596호)’다. 여기에 실린 제주도의 지도는 그동안 확인된 것보다 앞서 제작된 것이다.
이 지도는 8월 13일부터 10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대한민국 고지도 특별전에서 주인공 역할을 한다. 동여비고를 기탁한 소장자인 장윤석 씨는 “대동여지도(1861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제작된 지도이지만 역사적 의의나 수록 내용, 제작 시기 등에 대한 연구가 미흡해 그동안 일반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기회에 동여비고에 담긴 비밀을 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앞서 국립제주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동여비고를 살펴봤다. 동여비고는 32종의 지도를 60면으로 나누어 한 책에 수록한 지도첩이다. 크기는 가로 33∼68cm, 세로 37∼42cm 등으로 지역에 따라 다르다. 앞부분은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까지 영토와 지역별 통치 단위를 기록한 지도를 수록했다. 이어 조선 전국지도와 함께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도별도(道別圖)와 군현도(郡縣圖)를 담았다. 전국지도에는 대마도(對馬島)가 우리 영토에 포함되기도 했다. 끝 부분에 일본지도가 따로 들어갔다. 지명 변화를 비롯해 성곽, 군사요충지, 역(驛), 사찰 등을 자세히 기술해 조선시대 역사를 연구하는 훌륭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도 분량과 수록 내용 등을 감안하면 정치, 군사적 목적으로 왕실에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1997년 동여비고 영인본을 제작한 경북대 출판부는 경희궁과 북한산성, 강화도 돈대 표기 여부 등을 근거로 1682년(숙종 8년)으로 추정했다. 이와 달리 향토사학자 박혜범 씨는 울릉도, 독도 등 명칭에 근거해 1499년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여비고를 ‘동국여지승람을 이용하는 데 참고가 되는 지도’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700년 이전에 제작된 것이 확실한 만큼 제주 지도는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고지도인 ‘탐라순력도’(1702년)보다 앞선 것으로 보인다. 동여비고에 수록된 제주 지도에서 주요 오름과 하천, 사찰, 중요 건물 등 여러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 이전 명칭인 탐라(耽羅), 탐모라(耽毛羅) 등의 명칭이 쓰여 있다.
오상학 제주대 지리교육학과 교수(제주대 박물관장)는 “지도에 표시된 고려시대 14개 속현, 몽골 지배 당시 관청이던 ‘달로화적부(達魯花赤府)’ ‘군민안무사부(軍民安撫使府)’ 등은 기존 지도에선 볼 수 없는 것이라 조선시대 이전 제주를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라며 “동여비고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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