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경 지방의 한 대형쇼핑몰.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남자아이(8) 한 명이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교롭게 A 씨(24·여)의 엉덩이에 닿았다. A 씨는 깜짝 놀라며 아이 손을 뿌리쳤다. 이를 본 아이 엄마 B 씨(36)는 “아이가 엄마로 착각한 것인데 왜 신경질을 내느냐”며 항의했다. 말다툼이 커지면서 동행한 가족까지 합세해 여성 4명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난투극’으로 번졌다.
일부 목격자가 이 장면을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온라인에서는 ‘누구의 잘못이냐’를 놓고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 “아이가 뭘 알겠는가. 웃고 넘어갈 일”이라며 20대 여성의 과민반응을 질타하는 의견과 “아무리 어려도 엄연한 성추행”이라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 ‘아이의 접촉’ 놓고 곳곳에서 갈등
일상 속 작은 성폭력에도 민감해하는 사회가 되면서 아무 의식 없이 이뤄지는 아이들의 ‘손짓’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노인들이 “귀엽다”며 남자아이의 ‘고추’를 만지는 행위가 논란이 됐듯이 최근에는 아이들의 의식 없는 접촉, ‘무지(無知)의 터치’가 문제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만진 사람이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참으라는 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강조한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아무리 어린이라도 의도가 담긴 접촉으로 느껴진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달 서울 구로구의 한 영화관 로비에서 비명소리가 울렸다. 일곱 살 남자아이가 직장인 한모 씨(30·여)의 가슴을 두 손으로 만진 것이다. 한 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아이 부모의 만류로 참았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사들의 고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교사 이모 씨(30·여)도 지난해 11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학교 복도를 지나던 중 열 살 남학생이 갑자기 치맛자락을 들어올린 것이다. 이 씨는 “아이 부모에게 주의를 당부했더니 ‘옛날에도 아이들이 아이스케키 놀이를 하지 않았느냐’는 답이 돌아와 황당했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 교사 김모 씨(31·여)는 “아이들이 엉덩이나 가슴을 갑자기 만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싶어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남녀 아이 간 신체접촉이 부모 간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성 문제 상담 건수는 전체 518건 중 237건에 달했다. 신문희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은 “대부분 여자아이의 부모가 남자아이의 성적 장난을 문제 삼은 경우”라며 “부모들이 유치원을 옮기거나 소송으로 비화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 중 촉법소년으로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보호처분을 받는다. 그보다 어리면 어떤 형사책임도 지지 않는다.
○ 어릴 때부터 ‘피해자 관점’의 성교육 필요
전문가들은 ‘어린아이가 성적인 의도로 그랬겠냐’는 부모의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칫 아이에게 가해자 중심의 성 인식을 갖게 할 수 있어서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나이나 의도와 관계없이 (타인의 신체를) 만지는 행위 자체가 상대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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