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 초대 총장을 지낸 김영길 유엔아카데믹임팩트(UNAI) 한국협의회 회장(79)은 대학가에서 교육 철학이 남다른 인물로 꼽힌다. 또 학생교육, 특히 진로교육에 대한 관심이 특별했던 대학 총장으로 인식된다. 한국 대학들이 국내외 평가기관과 언론사의 대학평가를 중시하며 대학의 ‘교수 연구’(통상 대학평가에서 가장 비중이 큰 항목)를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중반 김 회장은 한동대 설립(1995년 개교)을 준비하며 학생교육(대학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특히 학생들이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것을 대학교육의 핵심 덕목으로 삼았다. 한동대가 개교 때부터 학부 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인성 △국제화 △융합전공 관련 교육을 강조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 회장은 2014년 2월 한동대 총장에서 물러난 뒤로도 진로교육을 포함한 대학교육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도 자신의 교육 철학과 경험을 담은 ‘공부해서 남 주자’란 책을 냈다.
김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기술을 강조하는 대학의 진로교육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구 UNAI 한국협의회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변화의 속도와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학들이 지나치게 기술에 초점을 맞춰 진로교육을 진행하는 것 같다”며 “리더십, 도덕성, 국제 이슈에 대한 이해 같은 펀더멘털(근본적인)한 역량을 종합적으로 키우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의 진로교육에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코딩 같은 새로운 첨단기술 관련 역량이 강조되고 있는 현재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4차 산업혁명으로 큰 변화가 오고, 수많은 난제가 발생할 것이란 점뿐이다. 어떤 기술이 얼마나 오랜 기간 파급력을 지닐지는 잘 모른다. 이로 인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새롭게 각광받는 특정 기술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어느 조직, 사회, 상황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펀더멘털한 역량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인성과 능력을 동시에 지닌 인재가 환영받는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 않나.”
―펀더멘털한 역량을 강조하는 진로교육은 어떤 것인가.
“21세기는 국경 없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감각과 지식은 필수다. 하지만 ‘영어 능력=국제화 수준’으로 보는 단순 접근법은 버려야 한다. 외국어는 기본이고,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등의 분야에서 국제사회가 미래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내가 속한 나라(한국)와 주변(동북아)을 넘어서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마인드와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G2(주요 2개국·미국과 중국)’는 물론이고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같은 개발도상국의 주요 이슈와 관련한 지식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교육을 받는다면 △정부 △글로벌 기업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중 어디에 진출해도, 또 세계 어느 지역에 나가서도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교육에선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인성교육, 즉 △정직성 △책임감 △리더십 등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대학에서 인성교육에 공을 들인다는 게 약간 어색하다.
“2008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보라. 탐욕에 눈이 먼 글로벌 금융 엘리트들이 초래한 재앙 아닌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비롯한 많은 경영대학원도 이 부분에 대해 반성하고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갈수록 사람보다 기술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나치게 성과 위주의 사고를 하는 분위기도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인성교육을 대학에서도 신경 써야 한다. 내가 엔지니어와 공대 교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술이 중요하지만 근본 혹은 핵심 역량은 아니다. 특히 국제적으로, 또 리더로 활동하겠다는 목표를 지닌 인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주장하는 방향의 진로교육을 추진하려면 대학교육이 정말 크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맞다.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세계 최고의 대학들도 자체 연구와 평가를 통해 학부교육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용어와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그들도 펀더멘털한 역량을 강조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한동대 총장으로 활동할 때부터 지금 언급한 내용들을 이른바 ‘세계시민교육’이란 명칭 아래 강조해 왔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한동대가 가장 일찍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만하다. 그동안 꾸준히 관련 교양과목을 운영해 왔고, 2019년 3월부터는 아예 세계시민교육을 부전공으로 정식 개설할 예정이다. 또 베트남과 캄보디아같이 한동대가 개교했을 때부터 지원해온 개도국 대학들에도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전수할 계획이다. 한동대 내에 정식 조직으로 내년에 문을 열 예정인 ‘반기문 UNAI 글로벌 교육원(Ban Ki-moon Global Education Institute in Support of UNAI·BKM GEI)’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교육 및 연구를 진행해 나갈 것이다.”
―반기문 글로벌교육원에 대해 좀더 설명해 달라.
“세계시민교육을 대학 안팎에서 교육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관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명예원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국제적인 감각, 실무능력,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갖춘 교수들을 뽑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원 과정도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동대는 물론이고 대학가 전반에 걸쳐 세계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훗날, 한국에서 세계시민교육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싶다. 또 대학의 진로교육에서 중요한 가치를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의 시스템 못지않게 진로교육을 바라보는 교수들의 관점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많은 대학에서 교수들이 진로교육 나아가 학생교육에 공을 들이기 힘든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각종 국제평가에서 순위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교수 연구를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은 교육기관이지 연구만 하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교육 전반, 특히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진로교육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진로교육이 이뤄지려면 교수들이 전공교육은 물론이고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의 목표, 적성, 역량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필요한 조언과 지도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전공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인생에서도 ‘학생의 멘토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교수가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한동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대학에서 교수들이 열정적으로 학생교육과 진로교육에 나서는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현직에 있을 때도 연구보다 학생교육에서 더 보람을 느꼈었나.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각각 엔지니어와 교수로 활동했다. 연구 성과도 많았고, 이로 인한 보람도 컸다. 하지만 돌이켜볼 때 역시 가장 보람이 컸을 때는 학생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그 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자기 몫을 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그래서 커리어 대부분을 연구 중심 기관에서 활동했음에도 한동대를 설립하고 운영하면서는 연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던 것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은 학생 혹은 자식을 국제적으로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하다면…
“여름방학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학원과 해외 영어캠프에 간다. 또 세계적인 관광지와 휴양지로도 여행을 다닌다. 하지만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개도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여행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도국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감각과 지식은 이제 한국에서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개도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체험을 통해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고, 책임감, 겸손함,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덕목을 기르는 데는 개도국 여행과 공부가 더 의미 있다고 본다. 한국도 이제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할 때가 됐고, 개도국도 한국에 관심이 많지 않은가. 바꿔 말하면,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는 우리 인재들이 새로운 것을 얻기도 쉽고, 또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 주기도 좋은 곳이 개도국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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