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재직 당시 “채무제로(0)를 달성했다”며 기념식수한 나무가 27일 2년 만에 죽은 채 뽑혔다. 경남도는 홍 전 지사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은 당분간 그대로 두기로 했지만 시민단체들이 강제 철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도지사 당선자 측도 ‘채무제로 정책’의 기조 변화를 예고했다.
경남도는 이날 오후 3시 굴착기와 인부를 동원해 도청 정문의 화단에 있던 40년생 높이 3.5m 주목을 파내 폐기 처분했다. 이 모습은 시민단체 관계자와 경남도 공무원, 취재진 등 60여 명이 현장에 나와 지켜봤다. 홍 전 지사 측 인사나 채무제로를 측면 지원했던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 등은 보이지 않았다.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허깨비 채무제로 표지석을 제거하라’ ‘채무제로 나무보다 표지석이 더 문제다’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김영만 경남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채무제로의 허구성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도민들이 이미 심판했다. 나무가 이미 죽었기에 파내지만 설령 살아있다 해도 파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은 지 2개월 가까이 지난 주목은 나무와 뿌리가 심하게 마른 상태였다. 굴착기에 끈을 달아 잡아당기자 힘없이 뽑혔다. 인부들은 주목을 파낸 자리는 흙으로 다시 메웠다. 나무 제거 작업에는 10분 정도가 걸렸다.
경남도는 표지석은 당분간 두기로 했다. 검은 표지석에는 ‘채무제로 기념식수. 2016년 6월 1일. 경남도지사 홍준표’라고 씌어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표지석 철거까지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표지석 앞에 ‘홍준표의 채무제로 나무는 탐관오리의 셀프 공덕비’라는 피켓도 놓아두었다. 김영만 상임대표는 “나무도 문제지만 핵심은 도민들을 괴롭혀 자기 실적으로 포장한 채무제로였다. 표지석은 수백 년을 가기 때문에 이걸 뽑아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경남도에서 표지석을 철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28일 삽을 들고 와서 뽑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서 홍 전 지사는 2016년 6월 ‘취임 이후 3년 6개월 만에 1조3400억 원의 경남도 빚을 다 갚았다’며 대대적인 채무제로 선포식을 열었다. 당시 야권과 시민단체가 “기금 통폐합과 무상급식 중단 등으로 만든 엉터리 업적”이라고 비판했지만 홍 전 지사는 기념식수로 맞섰다.
처음엔 사과나무를 심었으나 곧 죽었고 뒤이어 심은 주목도 고사했다. 이번에 파낸 주목은 지난해 4월 9일 홍 전 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한 이후인 4월 22일 새로 심은 것이다.
홍 전 지사의 최측근으로 당시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27일 보도자료를 내 “일 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피 땀 흘려 집 대출금 다 갚았더니, 호의호식하던 자식이 물려받은 집을 담보로 흥청망청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 당선인이 홍준표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채무제로 나무를 뽑은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경남도는 ‘홍준표 그림자 지우기’ ‘옹졸한 결정’이라는 일부 시선에 선을 그었다. 도 관계자는 “여러 차례 나무를 점검하고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한경호 도지사 권한대행이 자체 논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며, 김 당선인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당선인 측은 “채무제로의 허실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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