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 데이터 삭제된 채로 보관… 검찰 “실물 받아 복구 가능성 살펴야”
영장 청구땐 법원서 발부여부 주목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용하던 공용 PC의 하드디스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인 지난해 10월 31일 디가우징(자력을 이용한 데이터 완전 삭제) 방식으로 완전 소거 조치 후 별도 보관 중인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11월 3일 2차 조사를 지시하고 추가조사위원회 조사 활동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디가우징이 이뤄졌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증거 인멸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2008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전산정보센터에 처음으로 디가우징 장비인 디가우저 1대를 마련했다.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에 따라 전자정보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폐기하기 위해서였다. 대법원은 이 장비로 퇴임 대법관들이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하거나 이에 준하는 복구 불능 조치를 취했다. 그러던 중 2014년 12월 노후된 디가우저를 교체하면서 서울 서초동 대법원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 5개 고등법원에도 디가우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모두 7대를 도입해 1대씩 배치했다.
대법관들이 사용한 공용 PC의 하드디스크에는 법원 조직법에 따라 비공개가 원칙인 판결의 합의 과정이나 연구관들의 재판 관련 보고서 등 민감한 자료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은 이런 이유로 대법관이 사용한 하드디스크는 직무 특성상 임의로 재사용할 수 없는 장비로 분류해 폐기 처분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디가우징 결정에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등 제3자가 개입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대법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퇴임 때 해당 대법원장실과 대법관실에서 직접 처리를 지시하기 때문에 폐기 여부 결정에 대한 법원행정처 내부의 별도 결재선은 없다”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으로 훼손됐더라도 실물을 넘겨받아 폐기 경위와 복구 가능성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일단 법원행정처에 하드디스크 제출을 한 번 더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임의 제출을 받지 못하면 압수수색영장 청구 등 강제 수사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만약 강제 수사에 나선다면 결국 쟁점은 압수수색 영장의 발부 여부가 된다. 이미 하드디스크를 자체 조사한 법원행정처가 데이터 삭제를 이유로 검찰에 내지 않았기 때문에, 영장을 심사하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법원행정처가 하드디스크 제출에 대한 1차 판단을 했더라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하나의 법관으로서 완전하게 독립돼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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