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재추진을 놓고 부산경남(PK)권과 대구경북(TK)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존을 위해 두 지역 간 ‘물 전쟁’ 조짐이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자가 암각화 보존을 위해 경북지역 수자원을 활용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조만간 김종진 문화재청장을 만나는 등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송 당선자의 공약이자 문화재청이 제안한 울산 사연댐 수위 저감 방안을 논의하려는 것이다. 사연댐 수위가 낮아지는 데 따른 물 부족은 낙동강 상류의 안동·영천·임하댐에서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송 당선자의 수자원 확보 공약이 자칫 신공항 추진 논란처럼 경북 주민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 민주당에 따르면 송 당선자 측 관계자와 문화재청 관계자가 암각화 침수를 막기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최근 논의했다. 울산시장직 인수위원회인 시민소통위원회 관계자는 “송 당선자의 ‘맑은 물 확보’ 공약과 연계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반구대 암각화 주변 조사 자료를 받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송 당선자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낙동강 상류의 남는 물을 가져와 식수로 활용하면 사연댐 수위를 낮춰 국보인 암각화를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안동·영천·임하댐에는 울산 인구의 2배가 넘는 300만 명이 쓸 수 있는 물이 남아돌고 있다. 경북 지자체, 환경부와 협의해 이 물을 울산 식수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이는 6월 30일 임기가 끝나는 자유한국당 소속 김기현 현 울산시장이 암각화 보존대책으로 제시한 ‘생태제방’안을 사실상 폐기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시장은 경북 등 다른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사연댐 수위를 유지하는 대신 암각화 앞쪽에 길이 357m의 제방을 쌓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생태제방안은 “주변 경관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2009년과 2011년 문화재위원회에서 잇달아 부결됐다.
송 당선자 측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통과된 물관리 일원화 3법(정부조직법, 물관리기본법, 물관리기술발전법)에 크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 법은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분담하던 수자원관리 업무 가운데 하천관리를 제외한 수자원 이용·개발업무를 환경부가 총괄하도록 했다. 물 관리 주무부처가 환경부로 일원화됨에 따라 중앙정부를 설득하기가 비교적 용이해졌다는 게 송 당선자 측 판단. 지역 정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오랜 친구인 송 당선자가 정부 여당의 핵심 인사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송 당선자 공약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수리(水理) 분야 전문가인 조홍제 울산대 교수는 “송 당선자의 주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현실성이 없는 얘기로 결론이 났다.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면 취수 대상인 안동댐 등 인근 지역의 수량이 줄고 수질도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댐 주변 주민들이 물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데 부정적일 수 있는 데다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들이 한국당 소속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환경부가 나서 설득해도 지자체와 주민이 반대하면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울산시 관계자는 “경북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은 전임 시장들도 이미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없는 걸로 봤다”고 말했다.
한편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서는 최근 공룡 발자국이 추가로 발견되는 등 문화재로서 보존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청 고위 관계자는 “암각화 전망대 주변에 신석기시대 유적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사연댐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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