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서울SOS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진행된 독서지도학습. 강사가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하거나 문제를 풀도록 지도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달 29일 ‘이야기놀이터’가 펼쳐진 서울 양천구 서울SOS지역아동복지센터. 6월 8일 첫 수업을 시작한 후 다섯 번째 독서학습이었다. 이날은 ‘글의 내용 파악하기’ 시간이었다.
방 한가운데 책상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 6명이 둘러앉았다. 마주 앉아 떠들 법했지만 조용했다. 눈앞의 짧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기 바빴다. 이야기에 딸린 문제를 다 푼 학생은 손을 들고 강사를 찾았다. 안경을 낀 여학생이 모든 문제에 동그라미를 받고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반면 또래들 중 몸집이 가장 작은 남학생 한 명은 머리를 감쌌다. “아이 어려워!” 신은빈(가명·9) 군이 소리를 쳤다.
“왕, 자, 와…거, 지….”
신 군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작년까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글을 의미 단위로 파악해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글자의 소리만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책 제목을 말할 땐 ‘왕자’와 ‘거지’라는 단어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왕’자와 ‘자’자를 따로 읽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 군은 비단 국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옆 친구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의도치 않게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SOS지역아동복지센터의 신혜선 사회복지사는 “은빈이의 지능지수(IQ) 검사를 해봤을 때 경계선 지능(IQ 71∼84)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 아동에 속했다”며 “저소득 계층 맞벌이 가정에서 한글 교육이나 독서 지도에 충분히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 군에 대한 일대일 독서교육이 일주일에 4번 시작됐다. 우선 신 군이 복지센터에 딸린 늘품어린이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한 번 소리 내어 책을 읽은 후 모르는 단어를 강사와 공부했다. 단어가 이해된 후 다시 한번 신 군이 강사에게 책을 읽어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간 한글 위주의 독서학습을 한 끝에 신 군은 올해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놀이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성장했다. 이재숙 강사는 “속도가 조금 느리긴 해도 또래와 함께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초등학교 모든 학년 학생들이 주 1회 1시간씩 독서학습을 받고 있다. 온라인 독서를 포함한 책 읽기와 독서록 쓰기, 토론, 시 짓기와 신문활용교육(NIE) 등이 이뤄진다. 김모 양(9)은 “읽을 수 있는 책도 많고 (센터) 수업에서 읽은 책을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평생교육국 교육정책과에서는 지난달 4일 시내 지역아동복지센터 18곳에 독서교사를 1명씩 배치했다. 시는 2013년부터 저소득 계층이나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배려계층 아동의 방과 후 쉼터 역할을 하는 지역아동복지센터에 독서지도를 지원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독서지도교육이 시작된 5월과, 교육이 끝난 11월 학생 400여 명을 대상으로 독서능력을 비교 검사한 결과 독서 이해력(128%), 독서 빠르기(41%), 내용 표현력(109%)이 모두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이방일 교육정책과장은 “한글을 읽고 쓰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었던 아동복지센터 학생 40여 명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교육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는 사업인 만큼 앞으로 운영 기간과 기관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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