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못읽던 아이들 이해력까지 쑥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일 03시 00분


서울시 18개 지역아동복지센터, 6년째 일대일 맞춤식 독서교육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서울SOS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진행된 독서지도학습. 강사가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하거나 문제를 풀도록 지도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서울SOS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진행된 독서지도학습. 강사가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하거나 문제를 풀도록 지도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달 29일 ‘이야기놀이터’가 펼쳐진 서울 양천구 서울SOS지역아동복지센터. 6월 8일 첫 수업을 시작한 후 다섯 번째 독서학습이었다. 이날은 ‘글의 내용 파악하기’ 시간이었다.

방 한가운데 책상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 6명이 둘러앉았다. 마주 앉아 떠들 법했지만 조용했다. 눈앞의 짧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기 바빴다. 이야기에 딸린 문제를 다 푼 학생은 손을 들고 강사를 찾았다. 안경을 낀 여학생이 모든 문제에 동그라미를 받고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반면 또래들 중 몸집이 가장 작은 남학생 한 명은 머리를 감쌌다. “아이 어려워!” 신은빈(가명·9) 군이 소리를 쳤다.

“왕, 자, 와…거, 지….”

신 군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작년까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글을 의미 단위로 파악해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글자의 소리만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책 제목을 말할 땐 ‘왕자’와 ‘거지’라는 단어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왕’자와 ‘자’자를 따로 읽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 군은 비단 국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옆 친구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의도치 않게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SOS지역아동복지센터의 신혜선 사회복지사는 “은빈이의 지능지수(IQ) 검사를 해봤을 때 경계선 지능(IQ 71∼84)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 아동에 속했다”며 “저소득 계층 맞벌이 가정에서 한글 교육이나 독서 지도에 충분히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 군에 대한 일대일 독서교육이 일주일에 4번 시작됐다. 우선 신 군이 복지센터에 딸린 늘품어린이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한 번 소리 내어 책을 읽은 후 모르는 단어를 강사와 공부했다. 단어가 이해된 후 다시 한번 신 군이 강사에게 책을 읽어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간 한글 위주의 독서학습을 한 끝에 신 군은 올해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놀이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성장했다. 이재숙 강사는 “속도가 조금 느리긴 해도 또래와 함께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초등학교 모든 학년 학생들이 주 1회 1시간씩 독서학습을 받고 있다. 온라인 독서를 포함한 책 읽기와 독서록 쓰기, 토론, 시 짓기와 신문활용교육(NIE) 등이 이뤄진다. 김모 양(9)은 “읽을 수 있는 책도 많고 (센터) 수업에서 읽은 책을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평생교육국 교육정책과에서는 지난달 4일 시내 지역아동복지센터 18곳에 독서교사를 1명씩 배치했다. 시는 2013년부터 저소득 계층이나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배려계층 아동의 방과 후 쉼터 역할을 하는 지역아동복지센터에 독서지도를 지원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독서지도교육이 시작된 5월과, 교육이 끝난 11월 학생 400여 명을 대상으로 독서능력을 비교 검사한 결과 독서 이해력(128%), 독서 빠르기(41%), 내용 표현력(109%)이 모두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이방일 교육정책과장은 “한글을 읽고 쓰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었던 아동복지센터 학생 40여 명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교육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는 사업인 만큼 앞으로 운영 기간과 기관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지역아동복지센터#일대일 맞춤식 독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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